“열심히 사느라고 살았건만 문득 뒤돌아볼 때, 도무지 산 자취 없음은 생애를 스쳐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묘한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교묘한 순간들을 기억해내기로 하면 한이 없어,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뒤를 졸졸 귀찮도록 따라다니면서 환난으로부터 지켜주고, 고통을 받을 때 위로해주고, 좌절했을 때 용기를 주고, 교만했을 때 시련을 주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걸 일일이 따져보면 그 부피가 실로 엄청나서 내 생애가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태어남 자체가 그런 신비로부터 비롯된다.”
--- 본문 중에서
“자연은 완전히 어린이들로부터 소외되고 컴퓨터게임 속의 가상 세계만이 아이들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제 부모 형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책상을 나란히 한 친구에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채 컴퓨터게임 속에서 폭력을 즐김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어린이들과 교류하는 것만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현실엔 손톱만큼의 애정도 관심도 없이 가상 세계에서의 온갖 유희와 폭력과 국경 없는 교류를 위해 오로지 컴퓨터 명령에만 순종하는 아이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쩔 것인가.
… 제대로 된 사람은 자연과의 교감, 높은 인격으로부터의 영향, 피가 통하는 이웃과의 부대낌이라는 기초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저절로 알고 있는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우리 안에 아직은 동심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 본문 중에서
유다가 당신의 육신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먹은 후 오늘날까지 장장 이천 년 동안 당신에 관한 온갖 것을 사고파는 기업은 불황을 모르는 기업으로 성장 발달해왔습니다. 성경 말고 세상의 어떤 책이 이천 년 동안 변함없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누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 적어도 주일마다 교회에 거르지 않고 나갔으니까 나야 큰 재난을 당하지는 않겠지,하고 바라거나 수입의 일정액을 꼬박꼬박 헌금했으니 언제고 몇 곱으로 받을 날이 있겠거니, 은근히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의 가장 소박한 믿음도 실은 신자의 마음이라기 보다는 제품의 쓸모가 소문난 대로인가 아닌가 시험해보려는 소비자의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왕성하게 거래되고 흥청망청 소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소모되거나 고갈됨이 없으십니다. 그건 유다가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게 인간의 한계인 당신의 육신일 뿐 당신의 정신이나 신성은 아니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안 계신 데가 없으니 소비자가 원하면 상품 속에서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영원히 소모되거나 고갈됨이 없으시다는 걸 믿을 수 있는 까닭은 거래되지 않는 곳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당신의 현존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이 근면한 노동으로 얻은 소박한 식사를 앞에 놓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올리는 감사 기도 속에도 당신은 기꺼이 계시거니와 기름진 음식과 좋은 술을 배가 터지게 먹고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밤, 정신의 갈증과 절망을 이기지 못해 필사적으로 마음의 두레박질을 하는 이에게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현존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회개하는 죄인, 애통해하는 에미, 박해받은 의인, 신음하는 병자, 슬퍼하는 선한 이가 아주 없어지지 않는 한 당신은 줄기차게 부활하시어 그들 가운데 계시리라 믿습니다.
- '최초의 크리스트 세일즈맨, 유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