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사의 편지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다 보니 예전 방식에서 보면 있어야 할 것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우선 학교에는 진정으로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없습니다. 학교에는 잠을 자러 온 아이들과 친구와 놀러 온 아이들 그리고 무작정 온 아이들, 또 무시무시한 부모님의 사주를 받고 성적 사냥을 하러 온 아이들뿐입니다.
가르침을 업으로 한다는 우리 사이에도 진정한 교사는 없습니다. 교과서를 읽히고, 진도를 나가고, 시험 문제를 풀어 주면 그만입니다. 안정된 직업이라서 교사직이 좋다는 사람, 자신이 받은 상처를 되갚아 주는 맛으로 산다는 사람, 승진을 위해 아첨하는 사람, 맞벌이로는 최상이라고 주변에서 부러워해서 좋다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재의 공간에서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학생이 배우려 한다든가(즉, 의미를 묻거나), 교사가 가르치려 한다든가(즉, 의미를 가르치려거나)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위험할 뿐 아니라 반드시 대가를 치릅니다. 그래서 유명한 교육학자나 교육 지도자들이 ‘배우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모두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늘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지요. 가르쳐야 하는데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허다한 날 꼼짝도 않고 낮은 포복을 한 채 학교생활을 하면 과연 행복할까요?
우리는 학원 강사들처럼 교과에 투철한 전문성이 있지도 않고, 방문 교사들처럼 친절하게 한 아이 한 아이를 돌보지도 못하고, 과외를 하는 대학생들처럼 아이들과 친근하게 지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또 비전문가로서 수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멋지게 표가 나지도 않습니다. 만일 표가 나는 멋진 일을 하려고 들면 그 또한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보다 두 배로 일이 늘어나는 것이라서 특별한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학교보다 학원을 중시하는 학부모들, 배움의 결과는 오직 성적 말고는 없다는 전통은, 득의양양하게 기세를 떨치며 학생들과 교사들을 엇갈리게 만듭니다. 사실 지금처럼 선행 학습 시대를 살고 있는 교육 환경에서 지식이 풍부한 선생님들은 다른 곳에 있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진정으로 가르치려고 든다면 많은 것을 걱정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우리는 몸을 사립니다. 그래서 학교는 조용히 다녀가는 곳이 되었고, 학교 밖에 있는 연수원과 모임들만 시끄럽습니다.
학교는 이렇게 부재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상처 입은 교사들입니다. 어느 하나의 문제, 누구 하나만의 상처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겠지요. 모두가 받은 상처들이 커지고 모여서 더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정말 우리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교사가 걸리기 쉬운 ‘선생님병 20’
선생님병이란 교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과 교사들의 무의식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 결과로서 아이들, 교사들, 또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교사의 과도한 특성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첫째, 혼내기병에 걸린 교사는 누구든지 잘 혼낸다. (내가 상담한 한 아이에 따르면 교사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누구든 다른 사람을 혼낼 수 있는 혼내기의 달인이라고 한다.)
둘째, 이분법병에 걸린 교사는 ‘잘하나, 못하나’를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둘로 나눈다.
셋째, 너희는 모른다병에 걸린 교사는 ‘너희가 뭘 아니?’ 하고 아이들을 무시한다.
넷째, 복종강요병에 걸린 교사는 ‘시끄러,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질문하지 마’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다섯째, 편애병에 걸린 교사는 ‘예쁜 아이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역시 이래서 잘하는 애들이 좋아’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뇌에는 잘하는 아이 다섯 명과 못하는 아이 다섯 명 말고는 기억하는 아이가 없다고도 한다.)
여섯째, 성급병에 걸린 교사는 ‘됐어, 내가 먼저 말할게’ 하며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곱째, 회피병에 걸린 교사는 ‘지금은 바빠’, ‘나중에 이야기해’라며, 일도 관계도 다음으로 미룬다.
여덟째, 모범병에 걸린 교사는 ‘똑바로 좀 해’, ‘제발 정해진 대로 하라니까’라고 말한다.
아홉째, 최고완벽병에 걸린 교사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최고가 아니어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열째, 구제병에 걸린 교사는 ‘넌 나 아니면 벌써 끝났어’라고 생각한다.
열한째, 자책병에 걸린 교사는 ‘너희가 담임을 잘못 만나서 그래’, ‘다 내 탓이야’라고 자책하며 잘 안 되는 것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열둘째, 비교병에 걸린 교사는 ‘다른 반은 다 잘하는데 우리 반은 왜 이러니?’ 하며 끊임없이 비교한다.
열셋째, 연수병에 걸린 교사, 혹은 연수 중독에 빠진 교사들은 늘 새로운 연수나 연구회를 찾아다닌다. (연수회를 무슨 부흥회로 착각하고 은혜(?)가 충만한 연수가 열리는 곳을 열성적으로 찾아다닌다.)
열넷째, 잔소리병에 걸린 교사는 뭐라도 한 마디 더 보태야 속이 시원하다.
열다섯째, 형사병에 걸린 교사는 ‘네가 그랬지? 다 알아’ 하고 추궁한다.
열여섯째, 잔업병에 걸린 교사는 툭 하면 아이들을 남겨 놓고 벌을 주거나 일을 시킨다. 아니면 자신에게 일을 부과해서 학교에 오랜 시간 가두어 놓는다.
열일곱째, 설명병에 걸린 교사는 매사 ‘내가 설명해 줄게’ 하고 나서는데, 학교 현장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함께 단체 여행을 간 팀에서 전직 교장선생님이 가이드를 제치고 자신이 더 많이 설명하거나, 혹은 가이드를 꾸짖어서 단체 여행팀이 장시간 괴로움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열여덟째, 규칙병에 걸린 교사는 ‘규칙대로 좀 해’라며 틀에 맞출 것을 강요한다.
열아홉째, 공부병에 걸린 교사는 공부 말고 다른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스무째, 경쟁병에 걸린 교사는 ‘남보다 잘해야 해’, ‘뒤질 수는 없지’라며 자신과 주변을 몰아세운다.
교사들이 만든 ‘행복한 교사 십계명’
1.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2. 아이들을 믿고 이해하며 사랑하자.
3. 나를 믿고 사랑하는 교사가 되자.
4.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 있는 교사가 되자.
5. 나는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6.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
7. 건강을 잘 챙기자.
8. 자주 웃자.
9. 수업을 연구하자.
10. 동료와 함께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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