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마다 문법 세미나를 하면서 몇 해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어엿한 문법책이 나오게 되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학과의 공식 문법 교재를 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일단의 고독한 문법 고수(高手)들이 모여 각고의 산고(産苦) 끝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편집방향을 정해 놓았다.

첫째, 대상을 스페인어 전공자로 한다.
둘째, 전공 교재를 목적으로 집필하는 만큼 우리말 설명보다는 스페인어 예문을 더 많이 넣는다.
셋째,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용법과 표현을 주로 다룬다.
넷째, 기존 문법서들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킨다.
다섯째, 가능한 한 많은 문법서들을 참조하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법 사항들은 가장 신뢰할 만한 지침서인 Esbozo de una nueva gram?tica de la lengua espa?ola (Real Academia Espa?ola (2004), Madrid: Espasa-Calpe)와 Gram?tica descriptiva de la lengua espa?ola (Bosque, I. & Demonte, V. (1999), Madrid: Espasa-Calpe, 전 3권)를 따른다.
여섯째, 연습문제는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혼자 숙고할 수 있는 기회로 삼도록 하기 위해 정답을 별도로 제시하지 않는다.

문법 공부란 유사한, 또는 대비되는 항목들과 비교해 가면서 이해하고 암기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강의를 들을 때는 이해가 되어도 회화나 작문에 직접 적용하려하면 선뜻 떠오르지 않거나 틀리기 쉬운 것이 문법이다. 이는 아직 철저히 이해하고 암기해 완전한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언어 공부는 술이 익듯 시간을 두고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정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보낸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더 더욱 아닌 것이다. 마음을 한 데로 모으고 흔들림 없이 꾸준히 쌓아나간다면 마침내 개안(開眼)의 경지에 오르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힘찬 날개 짓을 하며 창공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고급 문법 세미나를 지속할 수 있도록 Colloquium을 지원해 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본 문법서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최고의 문법서 집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함께 고생해 주신 이강국 교수 및 성초림 박사, 김준한 박사, 곽재용 박사께 깊은 사의(謝意)를 표한다. 지금까지 스페인어 교육에 헌신해 오신 스승님들께 이 책을 바친다. 작은 걸음이나마 그 분들의 뒤를 잇게 된 데에 무거운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준엄한 질책을 삼가 받들고자 한다. 오?탈자나 문법적 해석에 대한 학계 선?후배 제위(諸位)의 이견(異見) 또한 기꺼이 경청할 것이다.


2007년 元旦
미네르바 동산에 만개(滿開)할 벚꽃을 꿈꾸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