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속의 말은 죽어 있다. 그것은 세상에 나올 에만 살아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세상에 나온 말들이 거의 죽은 말이 된다. 송유미의 비눗물이 떨어지는 낱말이란 무슨 뜻일까. 방금 땟국이 없어진 것인가. 그런데 말의 체제는 말의 무한으로 나아가며 해체된다. 봄을 찾으려다가 봄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 떼로서의 말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에게 말은 수단이 아니라 본연의 제신(諸神)들이다.
고은(시인)
송유미의 「명태」는 인생의 축도(縮圖)다. “그대가 펼쳐놓은 엉성한 그물망”에 걸리기 이전의 자유로운 행복한 삶과, 그 뒤 오복을 빌고자 “젯상”에 올려지거나 “매질”을 당하는 억제된 희생적인 삶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저마다 대체 내 인생의 덫인 ‘그물망’은 무엇이었을까를 연상하게 된다. 아니, 보다 원천적으로 보면 그물망을 펼친 ‘그대’는 누구인가에 시선이 가면 얼핏 운명론과 마주하게 된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의 탈출이나 도피가 아닌 “내 순수의 아둔함”을 탓하며 운명의 그물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임헌영(문학평론가)
콜라병 속에 새 한 마리 살고 있다//스스로 병 속에 갇혀 사는 여자의 내면은 어떤 모습일까/송유미의 언어는 손바느질로 촘촘히 뜬 파스텔 톤의 조각보 같다/그 조각보의 이미지를 슬쩍 걷어내면/깊은 우물이 드러나고/놀랍게도! 그 우물 밑바닥에/오래된 남자의 편지를 품고 잠든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푸른 물속에 잠겨 있는 눈부신 누드
이윤택(시인,극작 연출가)
송유미 시의 바탕은 울음이다. “눈이 내리는 아버지의 문패 이름이 달린 집 앞/강보에 쌓인 아기”(「흑백사진 한 장」)로서 울기 시작한 그 울음은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 속에서 삼투하듯 서로의 몸속으로 스며들”(「나무의 우물」)면서도, “고래의 뱃속 같은 시간 속에, 눈물 속에/미끄러지다, 자빠지다, 그…렇…게,/시를”(「초록 눈의 자화상」) 쓰면서도 그치지 않는다. 울음으로 시작한 인생, 사랑도 울음이요 문학도 울음이다. 그러나 “아프게 피가 흐르고 상처가 난 자리에서 떨어지는 검은 상처의 꽃들”(「겨울 단추꽃」)을 보라. 시인의 울음은 열매보다 아름답다 하여 송유미는 “생애에 단 한번 멀리 날기 위해/웅크린 무서운 괭이갈매기들”(「신의 눈썹」)처럼, 언젠가는 눈물의 바다를 박차고 날아오르기를 꿈꾼다.
최재봉(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