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밝혀낸 뇌의 비밀?
이 책은, 음악이라고 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문화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처리하는지에 관해서 묻는다. 바꾸어 말하면 음악을 통해서 뇌의 비밀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ㅗ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잘못된 음을 알아차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내며, 수백 곡의 선율을 기억하고, 음악에 맞춰 말을 구른다. 이런 행동들,특히 복잡한 박자를 추출해내는 과정은 대부분의 컴퓨터가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고도의 활동이다. 그렇기에 음악을 하고 듣는 순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것은 뇌의 비밀에 다가가는 중요한 통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우선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1~2장). 물론 단순한 음악적 정의가 아니라 박자와 리듬, 음높이와 음색 등. 통상적인 음악의 요소들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묻는다. 예컨대 어떻게 우리가 음높이가 제각각인 노래를 같은 노래(부를 때마다, 부르는 사람마다 언제나 음높이가 달라지기 일쑤인 ‘생일축하노래’등)라고 인식할 때에도 뇌의 복잡한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주 속도의 변화를 얼마나 우리의 뇌가 감지해는지, 일부분이 상실된 음악을 듣고도 어떻게 전체 음악을 완성해 내는지 등을 논한다. 뇌의 어떤 부분이 어떤 음악적 요소들을 처리해내는지를 여러 사례와 최신 연구성과를 통해 밝혀낸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통념이 얼마나 빈약한 정보에 기대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예컨대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처리는 좌반구가 음악, 미술과 같은 감성적인 처리는 우반구가 담당한다는 상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어는 뇌의 절만만으로 가동되지만, 음악구조에 주목할 때 뇌는 양쪽 모두를 전부 가동시킨다는 것이다(166쪽).
음악에 관한 재능은 천부적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유독 음악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래서인지 미술신동은 드물어도 음악신동은 드물지 않다. 과연 그럴까? 레비틴에 따르면 뛰어난 음악가들에게도 음악적 유전자나 중추세포 따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수준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이는 ‘천재’들이라 할지라도 일반인들과 다른 뇌 구조나 회로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재능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며, ‘1만 시간 학습이론’을 제시한다. 예로, 가장 놀라운 음악신동이었던 모차르트도 이점에서는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남들과 비슷한 일반적인 수준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1만 시간 학습 이후 누구나 능숙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는 매우 구체적으로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달라지는 재능의 단계와 천재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꼬집어낸다(7장, 245~266쪽).
7080의 향수는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십대에 들었던 음악을 평생 동안 집착한다. 새롭게 소개되는 음악에 맞추어 취향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같은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습관의 원인이 (일반적인 통념처럼) 나이가 듦에 따라 보수적으로 바뀌고 새로운 음악에 관심이 없어져서일까? 혹시 인간 뇌 구조상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지은이는 후자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다. 실제로 유아의 귀는 태어나기 4개월 전에 이미 완전한 기능을 수행하며, 뇌의 발달에 따라 몇 개월에서 몇 년이 지나면 완벽하게 뇌가 청각 처리 능력을 갖춘다. 2~3세만 되어도 정확하게 음높이, 조옮김, 템포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이런 능력은 인류가 지금껏 발명한 가장 발달된 컴퓨터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복잡한 능력이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두 살 무렵이 되면 자신의 음악적 선호도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전문화된 언어처리 능력이 발달하는 시기와 동일하다. 연구자들은 십대 시절을 가리켜 음악 선호도의 전환기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음악에 정말로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는 10~11세 무렵이다. 이전에는 음악에 별 관심이 없
던 아이들도 이 시기가 되면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심지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거의 모든 기억을 상실한 노인들조차 십대 시절에 즐겨 듣던 노래는 대부분 기억한다. 열네 살 무렵이 되면 우리의 음악적 뇌의 배선이 어른의 수준으로 완성된다. 더 이상 새로운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점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18~20세 정도가 되면 각자의 취향이 완성된다.
셔츠의 단추를 채우지 못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윌리엄스 증후군에 걸리면 지적 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글은 고사하고 숫자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감성적으로는 훨씬 풍부하고 사교적이다. 또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에 대단히 능숙하다. 눈으로 보는 것과 손을 움직이는 것 사이의 협응력에 문제가 있어 스웨터 단추도 혼자 힘으로 채울 수 없던 아이가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이며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것이다. 마치 손가락에 또 다른 눈이라고 달린 것처럼 말이다. 윌리엄스 증후군은 소뇌 형성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지은이는 소뇌는 운동을 관장하고 대뇌가 감정과 정서 같은 작용을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는 뇌 역할 분담에 관한 통설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DNA 발견의 주인공 크릭과의 감동적인 대화를 통해 왜 가장 원시적인 뇌(소뇌를 말함)가 가장 인간적인 정서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지 묻는다(6장).
음악이 진화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한 사람이 썼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음악에 관한 뇌신경학적 이론을 제시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스피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실린 “음악은 청각적 치즈케이크”라는 음악 무용론을 강력하게 비판한다(이 점에서 그는 올리버 색스와 입장을 같이 한다). 저자는 음악이 인류가 여기까지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우연적인 산물이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언어보다도 더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도구였음을, 말하자면 진화의 최고 히트 상품이었다고 말한다. 음악이 언어의 발달에 편승해서 생겨난 산물이 아니며, 음악은 배우자가 될 이성에게 자신이 얼마나 지적, 육체적, 성적으로 알맞은 상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진화과정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진화론의 전제(스티븐 핑커나 레비틴 모두 이 점에서는 동일하다)에 입각해 음악이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서도 짝짓기 과정의 성적 적합성을 과시하는 징표였다는 예를 든다. 이와 함께 음악의 보편성을 입증하는 여러 인류학적 증거 등을 총동원한다(9장).
과학이 미학을 집어삼킬까?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같은 대가에서부터 떠오르는 스타인 이 책의 저자 대니얼 레비틴까지 이들은 첨단 과학으로 인간의 행위와 감정, 정서를 모두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과 정서적 효과를 염색체와 뉴런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지식이 음악의 감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대로 음악은 진화의 최고 히트상품이고 앞으로도 유용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갈릴레오의 일화처럼 말이다. “갈릴레오는 정확한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물체 낙하 실험에서 혼자 콧노래를 불러서 시간을 쟀다고 한다. 이보다 쓸모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