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아빠가 엄마에게 빽 소리쳤다.
"호들갑이 아니야! 맥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그래. 하나도 안 차갑다고."
나는 급히 달려갔다.
서둘러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아이스크림은 이미 녹아서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엄마도 왔다.
"어머나, 진짜네!"
"거봐. 내가 말한 대로잖아."
아빠가 우쭐댔다.
그러더니 곧바로 엄마를 윽박질렀다.
"어떻게 할 거야? 당신이 쓸데없는 것까지 이것저것 다 넣으니까 냉장고가 화난 거잖아."
--- p.9-10
"냉장고 님, 부탁이에요. 저희를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정 잡아먹겠다면 이 사람만 잡아잡수세요."
엄마가 아빠를 앞으로 떠밀었다.
"왜 하필 나냐고?"
아빠가 놀라 허둥거렸다.
"아, 좀 조용히들 하세욧!"
냉장고가 고함을 질렀다.
"왜 내가 당신네들을 잡아먹어야 하냐고요?"
--- p.18-19
"아, 알겠다."
학교에서처럼 내가 손을 번쩍 쳐들었다.
"뭔데, 겐이치"
"여름방학!"
그러자 냉장고가 냉큼 대답했다.
"띵동! 정답!"
그러고는 냉장고가 좀 수줍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예요, 저기, 저도 여름휴가 받아 수영장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요."
--- p.22-23
"뭐, 어머니 수영복이라도 상관없어요."
냉장고가 말했다.
"내 작은 수영복이 너 같은 애한테 맞기나 하겠어?"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입어보니 냉장고에게 딱 맞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은근 자존심 상하네."
엄마가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우리는 모두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 p.32-33
"그게 좀……."
"왜? 무슨 일 있어?"
"실은 나, 헤엄 못 쳐."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수영장은 좋아하지만 깊은 곳은 아직 무섭다.
그때 뒤에서 누가 말했다.
"야, 겐이치. 너 수영도 못하면서 수영장에 어쩐 일? 우헤헤, 얼레리꼴레리다."
학교에서 날 못살게 구는 못된 아이였다. -p.44-45
"왜 그래? 약속대로 수영장에 데려가줬잖아."
엄마가 냉장고를 째려봤다.
"맞아, 약속은 지켰잖아. 아니면 또 어디 데려가 달라는 거야?"
아빠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냉장고가 대답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아니라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러게."
아빠도 거들었다.
--- p.62-63
"잠꼬대?"
"그래, 잠꼬대."
엄마는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세우며 ‘쉿!’ 했다.
우리 셋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정말 들렸다.
"여름휴가 좋-다. 음냐음냐……. 헤엄치자, 풍덩풍덩.
역시 여름엔 수영장이 최고야……."
진짜다. 냉장고가 잠꼬대를 하고 있다
--- p.70-71
하루가 지나자 냉장고의 손과 발이 사라졌다.
이틀째에는 눈도 입도 코도 사라지고, 사흘째부터는 예전의 조용한 냉장고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고,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왔군."
아빠도 엄마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