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정선수로 출장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수면제 중독에 걸렸으며 1949년 11월 3일에 다자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역자 : 박현석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및 직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출판을 시작했다. 번역서로는 『판도라의 상자』, 『갱부』, 『인간실격/정의와 미소』, 『태풍』, 『이별 그리고 사랑』, 『젊은 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혈액형 살인사건』, 『몇 번인가의 최후』 외 다수가 있다.
다자이 선생은 아직도 오해 속에서 살고 계신다. 살아계실 때도 전설과 오해에 휩싸여 계시던 다자이 선생은, 사후 더욱 천박한 호기심과 터무니없는 비판 속에 휘말려버린 듯하다. 나는 15년 가까이 다자이 선생을 사형으로 모셔온 후진 중 한 명으로서 그 오해의 안개를 한시라도 빨리 걷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엮게 했다. ---「서사」 중에서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그렇게 강하고 사심 없는 애정을 쏟아내는 다케를 보고, 아아, 나는 다케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들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촌스럽고 덜렁거리는 면이 있는 것은, 나를 길러준 이 애처로운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내 성장 환경의 본질을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결코 품위 있는 환경에서 자란 사내가 아니다. 어쩐지 부잣집 아들답지 않은 면이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규정하려했으나 실패했다. 휘청휘청 집에 돌아와 보니 낯설고 신기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H는 현관에서 내 등줄기를 살살 문질렀다. 다른 사람도 모두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인생의 다정함에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큰형님도 고향에서 달려와 거기에 있었다. 큰형님은 나를 엄하게 야단치셨지만 그 형이 정겹고 살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기한 감정만을 맛보았다. --- 본문 중에서
그 다음다음 날이었던가, 이부세 씨가 미사카토우게에서 철수하기로 했기에 나도 고후까지 같이 따라갔다. 고후에서 나는 한 아가씨와 맞선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이부세 씨를 따라서 고후 시내의 외곽에 있는 그 아가씨의 집으로 갔다. 모당(母堂)께서 우리를 맞아주셔서 객실로 들어갔고,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아가씨가 들어와서, 나는 아가씨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문득 이부세 씨가, “아아, 후지.”라고 중얼거리며 내 뒤쪽의 중인방을 올려다보셨다. 나도 몸을 비틀어 뒤쪽의 중인방을 올려다보았다. 후지산 정상, 대분화구의 조감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새하얀 수련을 닮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다시 천천히 몸을 되돌릴 때 아가씨를 힐끗 보았다. 결정했다. 약간의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지는,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