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굽이굽이 우여곡절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를 반복하며, 자책하고 자존감을 무너트렸다. 때로는 나를 세상에 내놓은 부모님을 원망하고, 아무리 기도하고 빌어도 구원의 손길을 내리지 않는 신조차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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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내 삶과 연결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체는 영적인 나이므로 내가 주인이 된다. 누구에 의한, 누구로 인한 시련과 불행이 아니었다. 고통 또한 누군가 내게 넘겨준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세상에서 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카르마로 연결된 그들도 그들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지금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전생에 어떤 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다음 생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답은 그 안에 있었다.
--- p.16-17
시련은 앞에 있고 감사는 내 뒤에서 나를 지킨다. 그들은 모두 사랑이었고, 나를 지켜주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수호천사였다. 악인은 때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선인의 모습으로 내 삶 깊숙이 배치된다. 하지만, 괜찮다. 나의 삶 속에는 현생으로 오기 전 곳곳에 배치해놓은 수호천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군이다.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선과 악이 그 차원과 에너지의 파장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높은 선의 차원에 나의 의식을 뒀다면, 낮은 악의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련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시련도 결국은 전생에 내가 배치해놓은 허들과 같다. 내 삶의 근육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삶의 재료임을 나는 알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아홉수가 두렵지 않다. 준비된 자에게 시련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기 때문이다.
--- p.25
나는 왜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에게 그런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이 되는 것보다,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충실했다. 이는 기준점이 스스로의 인정이나 만족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의미다. 보이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타인이 말하는 나의 장점인 착한 사람,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그들의 생각일 따름이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없이 양보하고 배려했던 결과로 얻게 된 평가인 것이다. 결국 타인이 평가한 내 장점은 나와 가족에게는 커다란 단점이었다.
--- p.78
시련은 내게 변형된 축복이었다. 가진 것과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함도 갖게 했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고, 내게서 떠나는 모든 것들의 이유와 흐름을 이해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게 머무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비워내야 그곳에 새로운 것들이 채워짐을 깨닫게 됐다.
--- p.131
돈과 친해지고 싶어서 돈을 좇아 살았다. 이것은 짝사랑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돈을 사랑했지만, 돈은 나를 불편해했던 것 같다. 돈에 대한 내 마음만 중요했던 것이다. 돈이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우선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간절히 원해도 오지 않는 돈을 원망했고, 돈 탓, 세상 탓을 했다. 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집착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에 집착은 옳지 않다. 집착은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간절함을 포장한 집착과 결핍의 마음으로 돈을 대했다. 그러니 돈은 진심으로 사랑을 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 셈이다.
돈과 친해지고 싶다면, 상상해라. 돈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돈과 함께할 때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지 그것만 생각해라. 그리고 돈이 주는 행복과 안락함에 감사해라. 돈은 감정을 읽는다. 행복과 감사의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지면, 돈은 그곳이 자신이 머물 곳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와줄 것이다. 돈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이 주는 행복감과 감사함 속에서 매일을 살아라. 그렇게 쌓인 매일매일이 부와 성공의 삶으로 당신을 이끌어줄 것이다.
--- p.188
오늘은 처음 만나는 날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도 처음 만나는 나인 셈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설렜던가? 또 얼마나 나를 꾸미고 치장하며 함께할 시간을 상상하고 즐거워했던가?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기분으로 자신을 대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이고 마음을 쓰는데, 하물며 자신을 만나는 것에는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자존감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저항 없이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