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는 현찰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내가 얼마를 지급했는지, 상대방은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 사용했는지에 대한 꼬리표가 없다. 반면 수표나 온라인 송금, 신용카드 등은 송금시간, 액수, 상대방 등 모든 기록이 남는다. 자신이 아무리 노출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금융기관이나 정부가 알고자 마음먹는다면 공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터넷 상거래에 있어서는 온라인 송금이나 신용카드 외에는 뾰족한 결제 수단이 없으며, 이는 곧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언제든 감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온라인상의 현찰, 비트코인이다.
--- p.14 「사이퍼펑크와 비트코인」 중에서
이렇듯 전자화폐는 은행의 도움을 통해 위폐를 단속하는 중앙집중형 방식과 은행의 도움 없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위폐를 자동으로 단속하는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때 전자를 ‘가상화폐’라고 하며, 후자를 ‘암호화폐’라고 부른다. 한때 국내에서 유행했던 SNS인 싸이월드의 ‘도토리’ 같이 이들은 구성원들 간의 약속(약관)에 의해 그 사용처 및 가치를 인정받는다.
--- p.18 「가상화폐와 암호화폐의 명칭을 둘러싼 논쟁」 중에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스테가노그래피가 등장하였고, 디지털 사진, MP3 음악 파일, 웹페이지, 영화 등에 비밀 메시지를 숨기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와 같이 이미지 파일이나 음악 파일을 이용할 경우, 전 세계 인터넷에 떠 있는 수백억 개의 이미지 또는 웹 사이트에서 어떤 이미지가 메시지를 숨긴 이미지인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막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 p.29 「암호의 기원」 중에서
전자서명이란 전자문서를 작성한 자의 신원과 전자문서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정보로 실생활의 도장 날인이나 서명과 유사한 개념이다. 전자서명의 가장 일반적인 예로 전자펜을 이용한 그래픽 기반의 서명 방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도장이나 수기서명을 이미지화하여 저장하였다가 서명 시점에 사용하는 것으로서, 포토샵 등을 이용한 복제가 쉬우며 단지 사람의 시각에 의존해서만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안전?신뢰성 측면에서도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 p.42 「공개키 암호를 사용하여 전자적으로 서명하기」 중에서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보통은 신용카드나 실시간 계좌 이체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에 대한 내역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를 인지한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은 1982년 인터넷에서 현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추적 불가능한 전자화폐를 최초로 제안하고, 1990년에는 네덜란드에 ‘디지캐시’라는 회사까지 창업한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기 때문이었을까, 디지캐시는 1998년에 파산한다. 하지만 차움 박사의 전자화폐에 대한 갖가지 아이디어들은 진화를 거듭해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으로 계승된다.
--- p.52 「암호화폐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 중에서
비트코인에서는 은행이 아닌 모든 비트코인 이용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해 위폐 사용자를 탐지하고 막아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들을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를 위해 옳은 블록을 가장 처음 만든 사람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로서 비트코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온전한 블록을 제일 먼저 생성해 공유한 대가로 암호화폐를 받는 행위가 앞에서도 언급한 ‘채굴’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얘기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 p.74 「1세대 암호화폐,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블록체인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탈중앙화’이다. 분산돼 있는 컴퓨터상의 데이터가 불일치하는 현상인 비잔틴 오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에는 합의 메커니즘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터넷 투표 기능이 내장돼 있다. 때문에 암호화폐 기술이 완성된다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인터넷 투표가 완성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 p.124 「블록체인 혁명」 중에서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초의 공개키 암호이자 현재 인터넷 보안 기술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RSA 공개키 암호가 바로 이 소인수분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2부 3장에서 설명했던 RSA 공개키 암호의 안전성은 큰 숫자를 소인수분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연유로 임의의 정수를 빠른 시간 안에 소인수분해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될 경우 RSA는 무용지물이 되게 된다. 더욱더 우려스러운 것은 쇼어의 알고리즘은 양자컴퓨터로 이산 대수 문제를 단시간에 풀어냄으로써 ECDSA와 같은 타원 곡선 암호를 깨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 p.148 「암호화폐의 문제점」 중에서
최근 ‘메타버스’ 열풍이 금융, 교육, IT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서 메타버스와 접목된 NFT 및 암호화폐, 블록체인 또한 각광을 받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1992년 사용자가 아바타로 존재하는 가상의 온라인 세계를 묘사한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초월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실제 삶을 뛰어넘은 우주, 즉 컴퓨터 기술을 통해 3차원으로 구현된 일상의 경계를 벗어난 가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메타버스가 잘 묘사돼 있다.
--- p.172 「NFT와 메타버스」 중에서
사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정보 독점 및 권력화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탈중앙화된 거래소가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있으나 아직 보안성 및 유동성 공급의 안정성 측면에 있어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남아있다. 기업이 이윤을 내려고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사토시 나카모토의 유산인 암호화폐와 이용자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거래소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소명의식과 사명감은 뒤로한 채 분권화, 투명성 등 사토시 나카모토의 철학을 그저 마케팅 용도로만 활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어쩌면 기존의 금융기관들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 p.194 「암호화폐 거래소와 사토시의 철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