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비평적으로 극찬을 받았던 영화 중 한 편인데요. 예를 들면 ‘류승완 감독 영화 중에서 최고다’, ‘그 해에 나왔던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호평이었죠. 느낌이 어떠셨어요? 나는 왜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처럼 못 될까, 그렇게 생각하신 적도 있었는데 부당거래는 그 해에 어느 감독 부럽지 않을 만큼의 극찬을 받았잖아요.
류승완 저는 그때 기분이 정말 좋기도 하면서, 진짜 나쁘기도 했어요. 비평에 대해서는 정말 고마운데, 산업에 대해서 기분이 안 좋았죠. 부당거래 이전에는 제 대본으로 만났던 사람하고 시사회에서 악수를 하면 손을 빼려는 게 느껴졌었어요. 그런데 부당거래끝나고 나서 같은 사람을 만나 악수하는데 악력이 다른 거예요. 그런 일을 두세 번 경험하고 나서 신세계 제작했던 한재덕 프로듀서하고 담배 피면서 ‘잘되고 볼 일’이라고 얘기했었어요. 그때 한재덕 프로듀서도 정말 어려웠던 때였거든요. 영화 한 편 잘못 되면 완전히 한물간 사람 취급하고, 또 한 편 잘되면 한껏 치켜세워주는 거죠. 예전에 선배들이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던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죠. 오히려 저는 부당거래가 끝나고 나서 펀치가 세진 게 아니라 맷집이 세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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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웃음) 지난번에 박찬욱 감독님한테 어떻게 하면 크게 실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큰 꿈을 갖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류승완 맞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인터뷰를 찾아서 볼 때쯤 됐으면, 자기가 이미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늦었다는 걸 아는 나이잖아요. 요새 저는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거든요. 정말 잘 죽었으면 좋겠어요.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고 한없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봐야 되잖아요. 막상 해보면 또 별게 아니란 말이에요. 젊어서 많은 경험을 해서 어떤 절실함도 없고 그냥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는 가장 부러워요. 제 동생이 그렇거든요.
곽도원예전에 신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연기는 도 닦는 거다” 왜 저 말씀을 하실까 생각해 봤는데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았어요. 이게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모르겠어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액션이 아니고 리액션이라는 걸 어느 순간 느끼고, 리액션을 하려면 무대에서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또 깨닫게 되었고요. 누군가를 관찰하게 된다는 거죠.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그거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무턱대고 좋을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이 무턱대고 싫을 때가 있거든요. 나한테 해코지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그냥 싫을 때가 있어요. 반대로 나한테 준 것도 없는데 그냥 좋을 때도 있거든요. 나의 어떤 부분과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맞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이 좋고, 어떤 부분이 안 맞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이 싫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자아 발견이 중요하다는 거죠. 자아 발견을 한 다음에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저런 사람이 싫구나, 저런 사람이 좋구나’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무턱대고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나라는 사람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하게 되고, 나라는 사람의 장점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그걸 드러내려고 하게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고, 관심을 갖다 보면 그게 머릿속에 어떤 캐릭터로 남게 되고, 그걸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서 쓸 수 있는 나만의 재산이 된다는 거죠. 그러려면 일상에서 겸손해져 있어야 하고, 허심해 있어야 하고, 향상심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노력을 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게 잘 안 돼요(웃음). 잘 안 되는데 노력을 해보려고 해요.
김태훈연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예전에 제가 마이클 케인의 자서전을 보는데 재밌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배우는 커피 잔 하나를 들어 올릴 때도 연기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니 지금 이야기처럼 삶에 있어서 결국 남을 관찰하면서 나를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