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서문을 읽다
― 경당일기 을묘년(乙卯年, 1615년) 7월 병오(丙午, 1일)
400세 조선 경당(敬堂)이 900세 송나라 정이(程?)를 만나는 아침,
어제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굵은 비의 혀가 만 가지 단서를 일으켜 참과 거짓의 경계를 가르니 지극히 큰 밝음이 어둠을 밀어냈다, 꿈속에서 서애 류 선생을 뵈었다
닭이 울어 새벽에 깨었다, 다시 잠들 수 없어 주역 서문을 읽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걸어 묻는다, 선생의 선생은 말을 콩처럼 골라서 답변을 하는데 분별이 어렵다, 하늘과 땅의 정적이 둥글게 부풀어 일어서고 있다
오래도록 가물다가 비가 내리니 모든 백성이 모를 옮겨 심는데 검은 머리 아이와 흰머리 늙은이가 논길에서 기뻐하며 함께 손뼉을 쳤다, 지난 봄의 일이다
마음은 계란과 같으므로 인(仁)은 곧 생(生)하는 성(性)이다, 마음이 살면 길(吉)과 흉(凶)이 한 몸 안에 있어 천하의 걱정이 앞을 향하니
주역 서문을 삼독(三讀)하면 둔갑을 한다고 미욱한 자들이 믿고 있다, 싸리울타리 너머가 숲이고 어둠이다, 아 두려운지고 깜깜한 내일이여, 대업을 내는 사람이여
머리를 빗지 않았다, 마음만 가지런히 빗고 족인(族人)의 초대에 갔다가 날이 저물어 취해서 돌아왔다, 일전의 일이다, 때는 처음부터 하나만 있지 않으니
주역의 말은 질문이고 대답이다, 만물은 변하기에 변하지 않음에 붙어 있다, 변화의 근본은 간단하다, 다음인 지금이 변화이다, 앞과 뒤가 없어야 불변이다
듣고 말하는 서책(書冊)은 사람이다, 소리가 없는 데서도 듣는 듯이 하며 얼굴이 없는 데서도 보는 듯이 해야 하느니, 삼천 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비 오고 해 진다, 달 뜨고 새 난다, 뿌리 있는 자만이 꽃을 피우느니, 피지 않은 꽃은 꽃이 아닌지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