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선생님은 물론 경력이 많은 선생님도 발령을 받을 때마다 학교마다 다른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우울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합니다. 자신도 납득이 가지 않는 규칙을 아이들에게 적용하면서 그 괴리감을 일상 안에서 온전히 겪어 내야만 하는 것이 결국에는 포기와 체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러한 선생님들의 고민이 더 이상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같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 이러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책에 담았습니다. (…) 그동안의 고민을 통해 내린 하나의 결론은, 학교 규칙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질서 정연’과 ‘학생다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적인 것인지 자문해 볼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p.5~7
진호는 오늘 실내화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아 운동화를 신었다. 담임선생님께는 아침에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지만, 복도를 지나다닐 때마다 다른 선생님들의 매서운 눈이 운동화를 신은 진호의 발을 귀신같이 찾아냈고, 진호는 점심시간 전에만 다섯 번이나 선생님들의 지적을 받았다. 선생님들의 눈빛과 목소리는 날카로웠으며, 마치 범인을 잡은 형사처럼 묘한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진호는 오늘 하루 종일 죄인이 되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했다. 나중에는 멀리서 선생님의 기척만 느껴져도 몸이 움츠러들고, 선생님들 중 누구와도 마주치기가 두려워졌다.
--- p.15
누구나 어렸을 적에 한 번쯤 술래잡기를 해 봤을 것이다. 술래잡기를 시작하면 술래는 다른 아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아이들은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닌다. 교사와 학생들도 학교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학교 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선생님과 선생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이 지나도 규칙만 조금씩 달라질 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서글픈 술래잡기는 계속되고 있다.
--- p.18~19
실제로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 규칙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정해진 규칙이 합리적이라면 이를 따를 수 있고 또 따라야 한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규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의 핵심은 다름 아닌 ‘관계’였다.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이 한 공간에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p.25
“수업 시간에 웃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가 장난을 치거나 말을 걸면 하지 말라고 정색해야 했어요. 반대로 심술 맞은 친구들은 일부러 다른 친구들을 웃게 해서 혼나게 만들기도 했죠. 웃으면 좋은 건데 왜 벌점을 줘요?” (양미나, 초등학교 6학년)
--- p.26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바로 이튿날 교장선생님께서 점심시간에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시더라고요. 사실은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보통 길에서 넘어져 다친 학생이 있으면 상처를 치료하고 도로에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지, 도로 자체를 없애지는 않잖아요.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살피고 지도하는 게 아니라 운동장 자체를 폐쇄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더라고요. 그저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말라고만 했으니 할 말이 없지요. 학교에서는 이러한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강요섭, 중학교 교사)
--- p.32
학교 규칙의 제정과 운영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로 중요한 교육적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의 주요 구성원인 교사와 학생이 학교 규칙을 만드는 일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단순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규칙을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 교육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 규칙은 학교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인 동시에 그 자체로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p.37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기를 거쳐 학교는 ‘국가권력에 복종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기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오늘날에도 학교 규칙이 효율적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 학교 규칙이 ‘복종의 내면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면 이제라도 이를 반성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p.79
초임 교사들이 가장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학급 관리다.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급 관리와 경영에 대한 실질적 역량을 길러 주지 않는다면, 교육 현장에서의 학급 관리는 교사 개인의 재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교사들이 성공적으로 관리를 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 이처럼 우리나라 교사 양성 과정의 미비함이 ‘학급 관리와 규칙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교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46
어른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규칙을 만들고 수정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와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이들도 시행착오를 거쳐 규칙을 만들고 수정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와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갈 권리가 있다.
--- p.167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 때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지. 누가 이렇게 떠들어?”라고 말하는 대신 “수업 시간 매너를 지키자.”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곧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고, 그 행동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므로 자발성을 갖게 된다. 사회심리학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 할 때는 스스로 자아를 작게 인식하고, 남을 돕거나 배려할 때는 스스로 자아를 크게 인식한다고 한다.
--- p.171
미리 정해져 있는 규칙을 적용하고, 규칙을 따르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 행동을 규제하는 일이 편리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기존에 하던 것을 하면 빠르고 간단하다. 규칙에 맞는 것은 칭찬하고, 어긋난 것은 벌을 주면 된다. 정해진 대로만 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 그러나 이미 정해진 규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교사가 배제되고 있다는 뜻이다. 교사는 고민하는 사람이다. “요즘 애들은 왜 저러지?”라고 한탄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왜 나타났으며, 이러한 현상이 왜 반복되는지 묻는 사람이다. 그리고 교육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 p.188~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