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무한히 이어져 있다면, 지평선의 안쪽 즉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우주 전체 안에서는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크기가 된다. 그토록 작은 범위에서 관측된 우주의 성질이, 무한한 우주 전체로까지 퍼져있는 것일까.
--- p.35
올베르스의 역설은, 우주가 무한한 과거부터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점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밤하늘이 어둡다고 해서, 우주공간이 무한히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 p.65
블랙홀 주변에서의 시공간의 휘어짐은 예사롭지 않다. 지구상에서는 평행선을 1,000km 정도 늘여도 두 직선의 간격이 겨우 mm 단위에서 변화할 뿐이지만, 블랙홀 주변에서는 평행선을 몇m만 늘여도, 두 직선 사이의 간격이 m 단위로 변한다. 만약 그런 세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상식이고, 평행선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 p.104
우리 우주에서 공간곡률이 현저히 두드러지는 거리는 3,000억 광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까지 얻어진 결과이다. 그 정도 큰 거리를 보지 않으면, 공간의 휘어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58
우주가 무한히 계속된다는 건 공간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만약 무한히 펼쳐진 우주가 우리 주변과 같은 모습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면, 그 안에 별이나 은하의 수도 무한개 있다고 할 수 있다. 별(항성) 주위를 행성이 도는 건 흔하므로 행성의 수도 무한개가 된다. 그중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도 있을 것이다.
--- p.219
우주가 ‘무’에서 태어났다면, 태어날 수 있는 우주가 하나밖에 없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에 우주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다면, 우리가 사는 우주와는 완전히 다른 우주가 몇 개라도 만들어지는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우리 우주만 태어나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우주가 ‘무’로부터 태어난다 해도, 그 우주들 사이에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거리’가 없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거리는 공간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공간이 없으면 거리가 없고, 거리가 없으면 넓이도 없다. 넓이가 없는 세계에서는 무한히 계속된다는 것과 같은 개념 자체를 적용할 수가 없다. 이것이 ‘무’가 무한히 계속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답이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