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불교 수행과 사회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투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빈곤과 부정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서 개인은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내재하는 탐욕, 증오, 망상에 대한 과감한 변혁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달라이라마의 저서인 근본적인 가르침의 서문에서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어느 것도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와 자연과의 관계를 영원히 변화시키는 광범위하면서도 전례가 없는 마음의 변화, 직접적이고도 열렬한 정신적 혁명이 필요하다. 이런 혁명을 통해서만이 지구가 절망적으로 필요로 하는 새로운 통찰력, 즉 모든 생각과 모든 행위의 상관관계, 자아에 대한 집착과 덧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온갖 착취와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지금 이 순간 어떤 형태의 봉사가 필요한가? 참선 수행 아니면 사회 정의 활동? 지금까지 나는 평생 풀어나가야 할 공안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시간을 들여 수행과 활동을 했고 이를 결합시키려는 실험도 해보았다. 도심 빈민지역의 한 개인병원에서 마약중독과 노숙 생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참선과 요가를 가르치면서, 존 카바트 진 박사의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MBSR)' 실습을 마치고, 옥스팜에서 MBSR 프로그램을 시작해 동료들에게 직장과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에 명상을 적용해 보도록 했다. 또한 보스턴에서 사회참여 불교연대(BASE) 지부를 창립했고, 동료인 로빈과 아이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과 저소득 이민 여성들과의 협력 활동에서 명상과 요가를 소개할 예정이다. 나는 매일 참선 수행을 하고 장기 안거를 위한 시간도 따로 두며, 단순하면서도 깨어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며 불교의 계율에 따라 행동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는 바쁜 도시생활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내적 혁명과 외적 혁명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 pp 237~239
깨달음을 향한 추구는 계속됐다. 오늘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삶을 살 게 될 것이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좋은 직장'이나 '전원주택' 등의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는 지극히 추상적인 것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저녁 좌선에 참석하지 않고 기분전환 삼아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나 자신을 잊고 좌선하러 감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조차도 이런 모든 탐색과 노력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 궁금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들로부터 "너도 자라서 어른이 되면 가정을 이루고 집과 차 두 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갖게 될 것이다"는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열반(涅槃)과 무소유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돈 버는 것과 직장에서의 승진,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만 우리 가족은 20세기의 일상생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추상적, 철학적 관념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 pp 135~136
3년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다투고 나서 보니 상대가 불자라는 사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스퍼와 내가 원했던 것은 원숙한 관계를 위한 내면의 성장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종교적인 존재, 불자로 인식했던 것이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어진 불자'라는 가면 속에 뿌리 깊은 고민과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균형을 잃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솔직하면서도 심각한 문제들은 덮어버리게 되었다. 어쩌면 진실한 존중과 의사소통, 경청과 사랑하지 못한데 대한 구실로 불자라는 사실을 내세웠는지도 모른다. 불자라고 하는 가면을 너무 믿은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둘 중의 하나가 폭발하더라도 다른 한 사람은 무한한 이해심과 지혜를 갖춘 부처가 되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제스퍼가 자신을 숨기기 위해 수행했듯이 나는 열심히 참선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불자인 애인을 사귀어야 하는가? 지금 생각하니 이 논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는 양쪽 다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종교가 같은 상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만한 관계가 각자의 영성 계발을 위한 지렛대가 된다는 점을 이제야 깨달았다. 불교가 인간관계의 기본은 아니다. 사랑, 배려, 애정, 존중, 정직 등과 같은 인간관계의 기본요건들이 불자의 밑거름인 것이다.
--- pp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