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 길이 행복한 것은 어쩌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동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칠고 삭막하게 살던 날들을 접고 순하고 아름다운 그 시간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들 일생을 통한 소중한 순례다. 만약 우리가 고향을 찾지 않게 된다면 그리하여 우리들 마음속의 동화도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아주 삭막한 불모지로 변해 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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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먹는 떡국 한 그릇에도, 고향에서 마주치는 눈빛 하나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이란 마음에 있고 마음은 ‘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삶의 자리를 정리할수록 행복의 자리는 그만큼 커간다는 것을 늘 기억할 일이다.
--- pp. 233∼234
날이 저물 무렵, 우리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폈다. 불길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불길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그를 보며 사람이 산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의미한다.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의 조용한 미소와 단촐한 삶이 말해 주고 있었다.
--- p. 191
그날도 그는 유난히 큰 걸망을 메고 왔다. 나는 그의 걸망이 유난히 큰 이유를 알고 있다. 책은 본 자리에 남겨 두고 떠나고, 돈은 생기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떠나고, 옷가지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 지니질 않는 그였기에 그의 걸망 속에는 평생의 세간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자유로운 것도 걸망 하나의 무게로 이 세상을 살아 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 150
도반스님을 따라 주지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나는 또 한 번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주지스님의 방에 들어서자 때마침 스님은 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이미 썼던 봉투를 잘 뜯어 깨끗한 속이 바깥이 되도록 풀칠을 하고 계셨다. 초로의 승려가 단정히 앉아 봉투를 재활용하는 모습은 내게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 pp. 145∼146
수행자는 항상 자신의 발밑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행로에 대한 점검이며 행위에 대한 마무리다. 발밑을 살핌으로써 오늘 하루도 자신이 진정 올바른 수행자의 길을 걸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수행자답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구도열이 치열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에 대한 점검이 없다면 그는 결코 올바른 수행자라 할 수 없다.
--- p. 95
스님이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산 지 어느덧 오 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 스님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찻길도 나 있지 않은 오지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스님이 그곳에서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은 내 허술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오 년 내내 바깥출입도 삼간 채 암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심심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대답했다.
“산이 참 좋아. 계곡의 물소리도 들리고. 이만하면 다 갖추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 p.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