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총각이라면 하나 갖고 싶지. 내가 돌봐야 하는 남편은 싫어.”
--- p.9,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중에서
항상 제로 상태인 것과, 주는 것과 받는 것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상태를 이루는 게 정말 같은 것일까. 어쩌면 상처를 주거나 받더라도 생활이라는 구덩이에 빠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 p.39,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중에서
계집아, 이 계집아가 하는 소리 좀 봐라. 암컷이 나이가 찼으면 얼렁얼렁 짝을 찾아 부모 무릎에 새끼를 안겨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돈도 안 나오고 장래에 대한 투자도 되지 않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국문학 공부를 한다고 집 밖에 나가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는 것도 가만 참고 앉았더니만, 이제 돈을 더 내놔라?
--- p.47, 「백귀야행」중에서
자연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하니 멀쩡한 사람도 귀신이 들려 2년 3년 후면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을 지 애비 에미보다 더 찾으며, 모더니즘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에 루카치 데리다 들뢰즈 라캉을 목마른 술꾼 아침에 냉수 들이켜듯이 하니 가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버텨내기 어려운 복마전이라.
--- p.51, 「백귀야행」중에서
미연이 이미 제가 귀신인 줄은 모르고 술 취한 정신에 웃으며 밤하늘을 향해 소리치니, 봄날 대학가에서 귀신들이 횡행하는 백 가지 이유 중 하나가 과연 이와 같은 것이다.
--- p.69쪽, 「백귀야행」중에서
원자폭탄은 인간의 강력한 권능과 사악함과 무력함을 한꺼번에 알게 해준다. 하지만 이미 탄생해버린 원자폭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들은, 되돌릴 수 없다…….
--- p.75쪽, 「히로시마의 아이들」중에서
그의 주먹은, 그의 발길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그것이 더 슬펐다. 몸을 웅크리고 아프지 않은 그의 손발을 막으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왜지?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저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일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 p.104, 「히로시마의 아이들」중에서
이런 경험을 얼마나 많이 한 후에 너는 어른이 되겠니. 지금이야 죄책감을 느끼면서 네가 기다리는 여자애를 평생 책임질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군대 가기 전에, 결혼하기 전에 앞으로 네가 겪을 비슷한 경험은 몇 번이나 더 될까. 좀 더 심한 경우를 생각해보면, 결혼해서도 과연 이런 경험을 벗어날 수 있을까.
--- p.112, 「열다섯, 서른다섯」중에서
내 열다섯 살 때, 거리는 이렇게 넓고 갈 수 있는 길은 이렇게 많았던가. 분명히 자신이 지나온 길인데도, 지금 거리를 헤매고 있을 열다섯 살 여자아이가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을 서른다섯의 은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p.134, 「열다섯, 서른다섯」중에서
“가족이란 그런 거다. 벗어버리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옷, 잠겨버리고 싶어도 나를 밀어내는 물. 부정하고 싶어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뿌리. 그렇지만 뛰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잘라버리고 싶은 사지. 내가 한 이야기가 고릿적 이야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 현재보다 더 생생하게 돌아오는 건 오래된 것들이야. 내가 우주에 있으면서 제일 뼈저리게 알게 된 일이 그거다.”
--- pp.162~163, 「하나를 위한 하루」중에서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그 후에도 위안이 되는 것은 사망선고가 내려진 순간, 희연이의 고통의 역사는 끝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희연이의 창백한 얼굴. 그 얼굴은 무릇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에게 진정으로 고통이 역사하기 시작했다.
--- p.217, 「고통의 역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