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武威’를 통해서 본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는 독자적인 지배조직을 갖춘 일본 역사상 최초의 무사정권武士政權이었다. 이 장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에 의한 가마쿠라 막부의 창립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무위武威’의 창출이란 관점에서 고찰하려고 한다. 그를 위해 우선 막부 성립의 전사前史로서 10세기 이후 무사武士의 형성과 성장 과정, 그에 따른 무사의 ‘무위’에 대한 자부에 대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무위’라는 용어는 사회적으로는 무예武藝를 고유한 직능으로 하는 무사의 위세威勢, 또는 무사의 무력武力이나 무용武勇에 담긴 위압을 뜻하고, 정치적으로는 중세 국가 속에서 차지하는 가마쿠라 막부의 무사정권으로서의 위광威光·위세를 가리킨다. 중세의 사회와 국가 속에서 이러한 ‘무위’에 관한 관념·의식을 추적하여 무사와 무사정권의 사회적·정치적 위상 및 자기 인식의 변화상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문인文人 우위의 정치이념이 보편적이었던 동아시아 세계에서 본다면, 일본 중세의 무사와 무사정권은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중세의 무사란 과연 어떠한 존재였는가? 그들은 어떤 의식과 행동을 보이고 있었고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무사를 조직기반으로 하는 무사정권의 성립·발전을 통하여 무사정권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자리매김하여 갔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중세 일본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근본적인 의문일 것이다.
중세 무사에 관한 연구는 제1부 제1장에서 살폈듯이, 이른바 ‘재지영주在地領主’=지방영주地方領主로서의 무사에 대한 경제적인 분석으로부터 최근의 사회사적社會史的인 무사직능론武士職能論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고 풍부한 무사상武士像을 제공해 왔다. 또한 가마쿠라 막부에 대한 정치사적 연구는 크게 권문체제론權門體制論과 동국국가론東國國家論에 입각한 방대한 성과를 가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종래의 연구성과에 의거하면서,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무사 세력의 사회적·정치적 성장 과정을 ‘무위’의 개념을 통하여 구성해 보도록 하겠다.
가마쿠라 막부는 본래 무사들의 무력을 결집한 군사정권으로서 성립하였다. 막부 존립의 현실적 근거는 군사력이었고, 막부는 군사정권으로서의 위광·위세를 국가 속에서 주장,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한 무사정권으로서의 위광을 ‘무위’로 파악하고 그것이 가마쿠라 시대를 통하여 어떻게 발현되고 확립되어 갔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살피는 데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막부幕府와 조정朝廷 관계의 실태, 나아가 중세 국가 속에서 막부가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장은 그 첫 번째 단계이다.

<b>[머리말] : 저자서평</b><br/><br/>학자라면 적어도 세 권의 저서를 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필자는 이제 간신히 두 권의 졸저를 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일본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출간하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으니 참으로 무능하고 나태하기 짝이 없다(『蒙古襲?と鎌倉幕府』, 臨川書店, 1996). 당시의 주된 관심은 몽골의 침략이라는 대외적 위기에 일본의 무사정권이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있었다. 중세 일본의 외교와 전쟁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무사정권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한국의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일본 중세사를 전공분야로 택했을 때부터 한국사나 중국사와 다른 일본사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무사정권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뇌리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학위논문 주제인 몽골의 일본 침략이 동아시아의 국제적 사건이었던 만큼 무사정권 자체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그 후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성립과 발전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작성했지만 가마쿠라 시대를 관통하는 자기 나름의 관점을 갖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br/>이 책은 그간 단편적인 연구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가마쿠라 막부의 정치사와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관련 내용과 전후의 시대 상황을 대폭 보완한 것들과 함께, 집필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작성한 연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2부 1~4장과 제3부 3장이 전자에 해당하며, 제1부 1~2장과 제2부 보론 및 제3부 1~2장이 후자에 해당한다. <br/>제1부는 도입부로서 일본에서의 가마쿠라 막부론을 다루었다. 1945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학설사적으로 주요한 연구들을 정리하고, 가마쿠라 시대 당대부터 근대까지의 가마쿠라 막부에 관한 여러 논의와 언설을 개관하였다. 오랜 무사정권의 역사를 가진 일본에서 그 시발점인 가마쿠라 막부를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대강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아울러 이것은 향후 연구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데 쓰임이 되는 기초적인 작업이기도 하다.<br/>제2부에서는 가마쿠라 막부의 지배이념의 두 축을 ‘무위武威’와 ‘무민撫民’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통하여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파악하였다. 중세 일본의 현실적인 지배이념으로서의 ‘무위’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통치이념인 ‘무민’은 상호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무사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모두 필수불가결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가마쿠라 막부의 정치사상을 분석할 때 ‘무민’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그 사상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무민’을 현실 정치의 맥락 속에서 상대화하고 종래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무위’에 중점을 두어 기술하였다.<br/>제3부는 가마쿠라 막부의 천황관과 국가의식의 전개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무위’와 ‘무민’의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는 지배의 정통성과 권위의 원천인 천황을 어떻게 인식하였고 전통적인 신국사상神國思想에 대해서 어떠한 사상적 영위를 하였는지 검토하였다. 특히 막부권력의 성격과 정치적 상황에 유의하면서 천황관과 신국사상의 변화상을 파악하려고 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가마쿠라 막부의 독자적인 지배의 권위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무사정권에 기반을 둔 새로운 국가의식이 형성된 사실에 주목하였다.<br/>이 책은 비단 일본사 전공자뿐만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층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폭넓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책의 구성과 내용에는 당연히 이 시대에 대한 필자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는데, 이에 수긍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비록 잘 다듬어지지 않았더라도 한국의 일본사 연구자로서 일본에서의 연구와는 조금은 다른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학계에 일조하는 것이 아닐까 자위해 본다. 이 책에 기술된 가마쿠라 막부의 역사상이 과연 얼마만큼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두려움을 가슴 한편에 품으면서 세상에 내놓는다.<br/>책이 나오기까지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 많다. 대학시절부터 은사이신 김용덕 선생님을 비롯하여 이근우, 현명철, 박훈, 원지연, 박수철, 강태웅, 이은경, 정지희, 김연옥 교수는 두어 달에 한 번 갖는 연구모임에서 기탄없는 비판과 소중한 조언을 해주었다. 각자 전공시대는 다르지만 일본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자칫 좁은 시야에 갇히기 쉬운 연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특히 정년퇴임 이후에도 변함없이 연구에 정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균형 잡힌 연구시각을 일깨워주시는 김용덕 선생님께는 늘 존경심과 송구함을 금할 수 없다.<br/>어느 덧 창립 20주년을 훌쩍 넘긴 한국의 일본사학회 회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논문 발표의 기회와 함께 활발한 토론의 장을 얻은 덕분에 거친 글을 가다듬고 몇몇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일부분은 일본사를 연구하는 동학들께 힘입은 바가 크다. 한국에서 일본사를 연구한다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회의 역사를 한걸음씩 만들어가는 모습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br/>집필하는 도중 부족한 자료를 일본에서 수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5년 가을에 때맞춰 초빙 팰로우십을 제공해준 일한문화교류기금日韓文化交流基金, 그리고 교토대학 일본사연구실의 우에지마 스스무上島享 교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우에지마 교수는 필자가 안식년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초빙교수로 따뜻하게 맞아주고 생활상의 편의는 물론 마음껏 자료를 조사하고 입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유학시절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마주앉았던 지우의 관계가 이렇게 이어지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묘한 인연의 작용을 떠올리게 된다. <br/>이 책을 출판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한국연구재단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 간 정해진 단계에 따라 집중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저술출판지원사업이 있었기에 게으른 필자도 중단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몇 차례 심사를 거치면서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는데, 이것은 초고의 부족한 점을 메꾸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끝으로, 한국에서는 희소한 학문분야임에도 책의 출판을 적극 권해주신 한국문화사의 조정흠님, 편집과 교정에 애써주신 홍윤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br/><br/><br/>2017년 12월<br/>남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