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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우리는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PRI를 통해 주 1회 나가는 [스마일리&웨스트]를 시작했고 이 프로그램은 우리 둘이 나눈 대화나 논의의 내용을 공공 라디오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해낸 구체적인 구성 방식은 동네 찻집이나 칵테일파티, 이발소와 미용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일반인들의 실제 대화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그들에게 따집시다’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간만큼은 진행자와 청취자의 평범한 관계를 벗어나서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추구하는 생각이나 사안, 행동 방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디스는 ‘그들에게 따집시다’에 전화를 걸어서 빈곤에 관한 우리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한 청취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가난에 대해 설교하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또 우리가 느끼기에 가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거나 그것과 관련한 조치와 언급을 피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다른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를 우리가 꼬집어 말하는 것도 그녀는 다 들었다.
이디스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 두 사람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무슨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 질문은 화살처럼 날아와 우리 가슴에 꽂혔다.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했다. 철학자와 방송인이 가난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해답은 참으로 간단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즉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을 활용해서 의식을 끌어올리고 빈곤 문제를 국가 주요 현안으로 제기하는 것이었다.
열정에 불이 붙으면서 ‘빈곤층 순방: 양심에 외치다’를 시작하기로 우리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2011년 8월 6일부터 버스를 타고 18개 도시를 돌면서 인종과 종교에 상관하지 않고 가난한 모든 미국인들의 고단한 삶을 조명해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빈곤을 중요한 국가적 문제로 제기한 것을 두고 그해 내내 많은 주요 언론기관들이 우리를 치켜세웠지만 우리는 영웅이 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우리의 목적은 빈곤 문제를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서 이 심각한 경기 침체의 늪에서 빈곤층과 유사 빈곤층, 신빈곤층이 등한시되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점에서 미국 내 빈곤의 새로운 양상이 국가 경제체제에 따라 수십 년간 계속된 부의 불균등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침체와 잇따른 주택 압류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많은 일을 하려면 더 많이, 즉 진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참전 용사를 비롯해서 전직 공장 노동자와 판매 직원 및 공사 현장 인부, 싱글맘, 부부, 아버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 했고 이것은 우리가 듣고자 했던 이야기들과 꼭 맞아떨어졌다. 우리가 탄 순방 버스를 보고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반갑게 맞이하고 고마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대적인 태도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였다. 디트로이트의 어느 시위대 무리는 우리 순방의 유일한 목적이 버락 H. 오바마 대통령을 맹비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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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방 일정을 끝낸 후,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간추려서 미국 공영방송 PBS의 심야 텔레비전 토크쇼인 [태비스 스마일리]의 특별 기획으로 일주일간 방송을 내보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빈곤의 복잡한 양상을 제대로 깊이 있게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특정 정치인들이 몹시 무정하고 노골적으로 빈민들을 폄하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선전용 멋진 구호 경쟁을 떠나서, 부와 특혜를 누리는 순탄한 삶이 보장된 이 고위직 후보자들은 가난이나 빈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다. 중산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직도 중요한 사항 하나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오늘의 신빈곤층은 바로 어제의 중산층이었다.
이 중요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 내 최고 지성인들 몇몇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미국에서 왜 빈민이 증가하는지, 그 난제를 분석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우리의 뜻이 힘을 발휘하여 2012년 1월 12일 워싱턴 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미국 재건하기: 빈곤에서 번영으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C-SPAN을 통해 생중계되었던 그날 행사에 참으로 특별한 선구자적 사상가들이 자리를 함께해주었다. 생활 경제 전문가 수지 오먼,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정치 활동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경제 자문가 마조라 카터, 지역 경제개발을 위한 인사이트 센터 회장 로저 A. 클레이 주니어, 기아 구호 자선단체 ‘피딩아메리카’ 회장 비키 B. 에스카라.
심포지엄에 관한 자세한 일정을 조정하던 중에, 우리는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빈곤층 순방을 통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비록 우리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제의는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다. 당시 우리는 빈곤에 관한 매스컴의 보도에 매우 심란하고 실망한 상태였다. 다들 미국의 뱅스터 및 주택 압류 관련 구제 금융으로 한층 심화된 실업 문제에만 초점을 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무척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마치 경기만 다시 살아나면 지금 우리의 문제들은 자동으로 해결될 거라는 인상을 풍겼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미국 전역을 돌면서 목격한 것들은 약간의 경기 상승이나 회복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다. 경제 회복은 미국 내 깊게 뿌리내린 빈익빈 부익부라는 문제 상황을 재구성하지 못한다.
우리는 순방을 하면서 가난의 여러 양상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가난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보게 되었다. 지금의 가난은 이번 대침체의 의붓자식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가난은 오래전부터 미국 땅에 존재한 가난이다. 때로는 이 나라가 가난에 용감히 맞서기도 했지만, 대개는 두려움과 비난 속에 뒷걸음질하기 일쑤였다.
대침체에 뒤이어, 미국의 상위 1퍼센트 부자가 나라 전체 자산의 42퍼센트를 통제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탐욕이 관례처럼 제도화되어 이 나라 구조 구석구석과 얽히고설켜 있음을 역사라는 렌즈를 통해서 우리는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미국이 국가이기 이전에 기업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빈곤층 순방을 진행하면서 경기 침체 전부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화려한 중산층에서 침울한 가난의 나락에 어찌나 빨리 떨어지는지, 이들이 애초에 진짜 중산층이었나 의심도 들었다. 실제로 어떤 경제학자들은 미국 내 중산층이 수십 년 전에 그야말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본인은 현재 가난의 나락에 빠져 있으면서도 각 세대는 부모와 조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고 굳게 믿음으로써 중산층으로서의 옛 정체성을 고집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았다. 거실에 떡하니 자리한 대형 텔레비전이 미국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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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곤층은 예전에 자신이 무시했던 사람들 속에 한데 섞여 복지 사무소나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푸드뱅크, 중고품 할인 상점 등을 서성인다. 자기가 뽑아준 정치인들이 그간의 국가적 재정 지원 혜택들을 도리어 없애고 빈곤층의 사회 안전망을 파기하는 것을 자랑삼아 떠드는 동안, 과거 중산층이었던 이들은 자신이 처한 모순적인 상황의 앞뒤를 맞춰보려고 애쓴다. 지금의 내 처지는 일시적인 거다, 어쨌거나 이번 정치판은 지난번보다 훨씬 낫다는 믿음을 고집하면서 말이다.
이번 저번 따질 필요 없이 다 똑같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국가의 사회 안전망에 싹둑 가위질로 뻥 뚫린 구멍 속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빠지고 있다. 소득 불균형은 현실이다. 가진 게 많은 자와 적은 자 사이에는 제도적인 구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제는 부자들과 나머지 우리로 나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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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주의는 공동의 이익에 집중한다. 공리를 보호하고 시민을 지키는 것, 특히 약자와 취약 계층을 살피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할 일이다. 연민의 정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확실한 의식 없이는 어떤 민주주의도 존속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미국 내 부의 불균등 정도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 주변에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바로 이런 것들에 달려 있는데 참으로 큰일이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미국 빈곤층의 현실을 묵살하고 비하하고 부정하기에 탐닉하는 신자유주의 옹호자들과 보수적인 우파 인사들, 기업의 꼭두각시 미디어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제 가난은 공개적인 비방의 표적이 되기 쉬운 피부색이 까만 사람, 빨간 사람, 갈색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빈곤 아동의 수는 나날이 늘어 이젠 수치스러울 정도이고 빈곤 문제는 모든 인종에 두루 걸쳐 우리 도시와 교외, 지역 공동체에 대책 없이 널리 퍼져 있다. 가난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인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처럼 가난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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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뿐 아니라, 솔직한 증언과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많은 탁월한 목소리들을 근거로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인 탈바꿈을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공통의 인간애와 책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언제 어떤 식으로 빈곤 퇴치가 이뤄질 수 있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숨길 수 없는 엄연한 사실들의 확실한 증거가 되어줄 통계 자료와 함께, 이 성명서는 우리가 잠깐의 위기를 겪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바로잡아줄 것이다. 지금의 재앙이 어쩌면 이 땅에서 영속될지 모를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놓여 있다.
빈곤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을 높이고자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만난 가난한 자들의 반격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더욱 담대해졌다.
이 빈곤 성명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서문」 중에서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