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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중고도서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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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222g | 113*204*20mm
ISBN13 9791155251317
ISBN10 1155251318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책방봄날   평점4점
  •  특이사항 : 초판본 내지 낙서 훼손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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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이름 없는 작가가 바닥에 놓은 작은 녹음기 하나에도 예의를 차리면서 자리를 내어주던 이들을 기억한다. 틀린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얼굴들을 기억한다. 그녀들은 또박또박 말하면서 때로 무의식중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 손은 주름지고 거칠었다. 쓰라린 세월 속에서 이를 악물고 살아온 이들이다. 폭풍 속에서 집을 지켜 왔고 자신이 겪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다음 세대를 길러 낸 이들이다. 여성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고 전승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길러 낸 자리를 우리가 모르고, 우리가 여전히 물려받은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녀들이 입을 열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녀들뿐 아니라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녹음기를 켜는 순간 마음이 간절해진다. ‘부디 말해 주세요, 당신이 살아 낸 이야기를 들어야 내가 살 것 같아요.’
---「녹음」중에서

“안 잊어버리는 게 있는데 옛날에 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외상으로 쌀을 얻으러 쌀가게에 갔어. 우리 집에서 골목을 돌아가야 쌀가게가 있는데, 쌀가게에서 외상을 잘 안 줄라 한다더라고. 눈물 난다…… 그래 엄마가, 진짜 쌀 얻어 올 수 있을까, 쌀가게에 가면 정말 쌀을 받아 올 수 있을까 졸이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봤어. 엄마가 바구니를 끼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데 왜 그리 마음이 안됐는지. 너무너무…… 못 얻어 온 거야. 난 그게 절대 안 잊혀…… 엄마는 그 수치심이 어땠겠니? 아, 그 수치심…… 나는 그게 죽을 때까지 안 잊힐 것 같아.” 말하는 이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서도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있다. 그때 인터뷰는 그의 영혼에 다가간 것이다. 그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다짐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울고 싶었는지.
---「눈물」중에서

여자들은 말을 하다가 종종 침묵했다. 가늘게 눈을 뜨고 혼자만의 상념에 빠지거나 신음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남편이 가정 폭력을 저질렀고, 자신이 죽고 싶었다는 말을 소리로만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손을 휘휘 내두르며 “쉬익” “사악” 하는 소리만 냈다. 폭력이 일상이 된 자리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이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말이 또렷한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폭력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녀들이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책과 논문들을 찾아 읽기도 했다. 때로는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하지 않기 위해 준비했다. 그래야 침묵 안에 들어 있는 기나긴 이야기를 추측할 수 있었다.
---「침묵」중에서

포르텔리 교수는 그날 두 가지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이 왜 당신을 믿어야 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매번 어긋나게 앉아 있다. 말하는 이는 상대를 보고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듣는 이는 둘 사이에 놓인 차이를 목격한다.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하더라도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평등한 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정체성이 다르고 계급과 지위가 다르다. 직접 대면했기 때문에 그 차이는 더욱 강렬하게 인식된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인터뷰 과정에서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어긋남」중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갇혀 있지 않았다. 그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싸우고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잘 알았고, 꿋꿋이 걸음을 떼고 있었다. 학대와 폭력과 가난과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삶뿐 아니라 이야기도 시간 속에서 자라고 변한다. 한 사람은 삶을 사는 동시에 이야기를 산다.
---「광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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