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리 쭝우 李宗吾 (1879∼1944)
청나라 말기인 광서 5년 중국 사천에서 태어났다. 농부였던 그의 부친은 9남매 중 여섯 째 아들인 리 쭝우만 공부를 시켰다. 리 쭝우는 사천에서 팔고문의 대가로 알려진 노단(盧彖)에게 수업을 받은 후 성도고등학당에서 수학했다. 학업을 마친 뒤에는 손문이 결성한 동맹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성도의 <공론일보>에 「후흑학」과 「후흑경」, 「후흑전습록」을 연재해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공자 등 중국 성인들을 비판한 「성인에 대한 회의」도 탈고했지만 사회적인 반발이 심해 발표하지 못했다.
1912년부터 몇 해 동안 사천성 관원으로 일했으며 이때부터 자신을 ‘후흑교주’라 부르며 제자들과 함께 ‘후흑국’ 건설에 나섰다. 1917년에는 교육계에 투신, 부순현중학교와 면양성중학교 교장을 지냈고 1922년에는 사천성 장학관에 임명되어 졸업시험 실시 등 다양한 교육개혁안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성도 <화서일보>에 「후흑사관」과 「후흑학발명사」, 「후흑철학」 등을 연재했고, 이 글이 1936년 북경에서 『후흑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져 다시 한 번 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리 쭝우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타계할 때까지,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후흑’의 길밖에 없다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였다.
1956년 천안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와 외국어대 강사를 거쳐 현재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열어 최고 통치권자에 관한 연구와 전문 집필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통치보감』, 『관중과 제환공』, 『치도와 망도』, 『역사 대장정, 왕』, 『통치학』 등이 있으며, 「역대 대통령 통치행위에 대한 치도론적 고찰」,「몽양주의에 대한 치도론적 고찰」,「서리의 정치적 역할에 관한 연구」,「선진 유법가의 치도관과 치본관의 비교연구」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