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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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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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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714쪽 | 139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454144
ISBN10 897245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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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냐시오 라모네 Ignacio Ramonet
1943년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레돈델라에서 태어났으며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자랐다. 파리의 사회과학고등학교에서 기호학과 문화사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드니 디드로 대학의 언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정학과 국제 전략 전문가이며 유엔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권위 있는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비정부기구인 미디어워치 글로벌의 회장이다. 1997년에 ATTAC(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연합)을 창설했으며, <세계 사회포럼>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소리 없는 프로파간다』『21세기 전쟁』『이라크, 재앙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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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과 보낸 100시간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몇 시간째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넓고 천장이 높았다. 커다란 창문엔 밝은 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창밖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었는데, 아바나의 가장 큰 가로수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쪽으로는 커다란 서재가 있는데, 길고 단단한 책상 위에 책과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책장 선반과 소파 양쪽 끝에 놓인 조그만 테이블에는 ‘사도’ 호세 마르티흉상과 동으로 만든 얼굴상, 시몬 볼리바르의 동상, 수크레Sucre 동상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흉상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철사로 된 조각품이 있는데, 로시난테의 등에 올라탄 돈키호테의 모습이었다. 벽에는 마에스트라 산맥의 주요 부관들 중 한 사람이었던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gos의 커다란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 말고도, 액자가 세 개 더 있었다. 하나는 볼리바르가 서명한 편지였고, 또 다른 하나는 커다란 새치다래를 보여주면서 헤밍웨이Hemingway가 헌정한 사진(“피델 카스트로 박사에게, 코히마르의 바다에서 이것과 같은 놈을 하나 찍기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으로”)이고, 그리고 1895년에 머나먼 스페인의 갈리시아에서 도착한 그의 아버지 앙헬 씨의 사진이었다.

내 앞에는 온통 하얘진 수염을 달고 평소처럼 단정한 국방색 군복을 입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피로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피델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가끔씩 속삭이듯이 말해서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때는 2003년 1월 말이었고, 우리의 기나긴 대화의 1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 때문에 나는 2005년 12월까지 여러 차례 쿠바를 가야 했다.

이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2002년 2월에 하게 됐다. 나는 도서전시회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아바나로 갔다. 그곳에는 2001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도 있었다. 피델은 내게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경제학자이고 미국인이에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급진적이죠. 그의 옆에 있으면, 나는 온건주의자예요.”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얼마 전에 참석한 포르투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피델은 모든 걸 알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토론 중인 주제들과 세미나, 참석자들, 그 전망 등. 그는 대안세계화운동쪵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반란 세대들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인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시위와 저항을 합니다. 또한 세계의 주인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각은 무기보다 더 중요합니다. 폭력을 제외하고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세계화에 맞서야 합니다.”

평소처럼 피델에게는 많은 생각들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그는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 또한 현대적이며 현명한 논지로 세계화와 그 결과,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방법들을 분석했다. 그 논지들을 들어보니 수많은 전기 작가들이 그의 특징이라고 강조한 자질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즉, 전략적 감각과 구체적인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 신속한 분석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자질에 수십 년간 통치하며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쌓아온 경험이 녹아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반쿠바 선전의 무의식적인 희생자가 되어 대안세계화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친구들,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이 그를 단지 냉전시대의 인물이나 현대 역사의 한 지도자로 여기고 21세기의 투쟁에 공헌할 수는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좌익의 핵심도 오늘날 아바나 체제에 대해 의심하거나 비판하고 반대한다. 비록 쿠바혁명은 계속해서 감동과 흥분을 조장하지만, 부서지고 갈라진 주제에 불과하다. 쿠바를 옹호하든 반대하든 간에, 쿠바혁명을 평가하는 순간에 열정을 식히고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얼마 전에 멕시코 사파티스타들의 낭만이자 거대한 영웅인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한 짧은 인터뷰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피델은 그 책을 읽었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쿠바의 총사령관에게 마르코스 부사령관 인터뷰와 비슷하지만 더 두꺼운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피델은 회고록을 쓰지 않았고, 시간이 없어서 앞으로도 쓸 일이 거의 없을 것이 확실했다. 그 책은 ‘두 개의 목소리로 쓰는 전기’이자, 정치적 증언이 될 것이었다. 또한 어느 정도 그가 공개적으로 위업을 달성하기 시작한 1953년에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벌어진 몬카다 병영 습격 후 50년이 지난 지금, 여든 살이 된 그가 스스로 내리는 인생의 평가가 될 것이었다.

살아서 역사와 전설의 세계로 들어와 영광을 누린 사람은 거의 없지만, 피델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국제 정치의 마지막 ‘거룩한 괴물’이다. 그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호치민Ho Chi Minh,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 아밀카르 카브랄Am뭠car Cabral, 체 게바라Che Guevara, 카를로스 마리겔라Carlos Marighela, 카밀로 토레스Camillo Torres, 투르시오스 리마Trucios Lima, 메디 벤 바르카Mehdi Ben Barka로 대표되는 신화적인 반란자들의 세대에 속한다. 이 반란자들은 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불평등과 차별로 얼룩지고, 소련과 미국이 시작한 냉전이 특징이 돼버린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과 희망을 가지고 정치활동에 전념했다. 수천 명의 지식인들과 진보주의자들, 심지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처럼 그 세대는 공산주의가 화사한 미래를 예고했으며 부정과 인종주의와 가난을 10년 안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시기에 베트남, 알제리, 기니비사우를 비롯한 지구의 반이 넘는 곳에서 억압된 민중이 봉기했다. 당시 인류는 대부분 식민화라는 오명에 굴복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이 계속해서 옛 서양제국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말에 복종했다. 그러는 동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론적으로 이미 1세기 반부터 독립국이었지만, 특권 소수들에게 수탈당하고 있었다. 종종 워싱턴의 비호를 받은 잔인한 독재자들인 쿠바의 바티스타, 도미니카 공화국의 트루히요Trujillo, 아이티의 뒤발리에Duvalier, 니카라과의 소모사Somoza, 파라과이의 스트로에스너Stroessner 등의 통치를 받았다.

피델은 내 제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면서 들었다. 그는 예리하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물었다.

“정말로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습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까?”

물론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수십 명의 기자들이 수년 동안 그와 대화할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언론전문가에게 20세기 중반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인물 중 한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는 인터뷰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마도 피델 카스트로는 가장 오랫동안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가 원수일 것이다. 비교를 해보기 위해 우리는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군대를 이긴 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아바나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던 1959년 1월 8일에 프랑스에서는 드골 장군이 제5공화정의 첫 번째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10명의 미국 대통령(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과 싸워야 했다. 또한 1945년 이후 세계의 발전을 이룩한 주요 지도자들(네루, 나세르, 티토, 흐루시초프, 올로프 팔메, 벤 벨라, 부메디엔, 아라파트, 인디라 간디, 살바도르 아옌데,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장쩌민, 요한 바오로 2세,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레이엄 그린, 아서 밀러, 파블로 네루다, 조르주 아마도, 오스왈도 과야사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훌리오 코르타사르,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올리버 스톤,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의 지도 아래 10만 평방킬로미터가 조금 넘고, 인구가 1천100만 명인 쿠바는 커다란 힘으로 세계 차원의 정치를 이끌어갔다. 미국 지도자들은 그를 몰락시키기는커녕 제거하지도 못했으며 쿠바혁명의 방향을 수정하게 하지도 못했다.

1962년 10월 미국으로 말미암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1961년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군이 직접 상륙한 히론 해안(피그만)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40년 넘게 워싱턴은 쿠바에 무역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1990년대 들어서 헬름스 버트 법안과 토리셀리 법안으로 강화됐다. 그 제재는 쿠바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경제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으며, 쿠바 주민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외에도 미국은 플로리다에 있는 강력한 마르티 라디오와 마르티 텔레비전을 통해 최악의 냉전시기처럼 쿠바라는 섬나라에 선전 프로그램을 퍼부으면서, 아바나 당국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간접 전쟁을 늘 하고 있다.

한편 쿠바 체제에 반대하는 여러 테러조직―특히 알파 66쪵과 오메가 7쪵쪵은 마이애미에 본부와 훈련캠프를 두고 미국 정부의 은밀한 도움 속에서 끊임없이 무장병력을 섬으로 보내 폭력사태를 기도한다. 쿠바는 최근 40년 동안 가장 많이 테러를 당했으며, 희생자(3천 명 이상)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계속 미국의 공격을 받았다.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이 끔찍한 공격을 받은 후에는 여러 차례 그의 목숨을 겨냥한 테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미국 민중에게 행해진 9·11 테러공격에 깊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워싱턴 정부와 어떤 관계든 간에, 미국에서 테러 행위를 하기 위해 여기에서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여기서 미국 민중을 우습게 여기는 말 한 마디라도 발견하게 되면, 내 손을 잘라도 좋습니다. 우리가 양국 정부의 차이를 미국 민중의 탓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무지한 광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카스트로 체제는 국내에서 필사적인 단합을 권장했다. 그래서 일당체제의 원칙을 유지했다. “포위된 성채에서 모든 이견은 배반이다.”라고 외친 성인 로욜라 이냐시오Loyola Ignacio의 낡은 신조를 자기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엄한 제재를 가했다. 그래서 국제사면위원회의 연간 보고서는 자유 분야(표현의 자유, 의견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서 쿠바 당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쿠바에는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수감됐다.”라고 보고했다.
어떤 이유든 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철폐한 사형제도를 실시한다는 사실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민주주의자도 견해 차이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으며, 최고형인 사형제도를 아직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이런 비판적 보고서는 쿠바에서 육체적 고문이나 정치범의 실종, 정치적 암살이나 공권력으로 진압된 시위가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또한 쿠바 체제에 반대한 그 어떤 민중 봉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근 국가들―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심지어 멕시코까지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반체제인사들, 기자들, 신부들, 시장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상 범죄는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국가들이나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수천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놀라운 유아 사망률, 문맹률, 무주택자, 실직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들, 거리의 아이들, 빈민가, 범죄율, 온갖 종류의 범죄……. 쿠바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는 특정 개인을 공식적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비록 피델의 모습은 언론과 방송,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초상화나 동상은 없으며 동전도 없다. 피델 카스트로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 혹은 기념탑도 없다. 아직 살아 있는 그 어떤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헌정된 것도 없다.
외부의 압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주권을 고집하는 이 조그만 섬나라는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 추방,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일반적인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인간 차원의 진보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교육과 건강, 의료와 스포츠 연구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그룹에 속할 정도이다.

외교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능동적이고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카스트로 체제는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과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또한 쿠바 군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큰 규모의 전쟁, 특히 에티오피아와 앙골라 전쟁에 참가했다. 쿠바는 앙골라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리트 사단을 격퇴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체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혁명의 주도자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이다. 이 쿠바혁명은 분명한 문제들(경제적 난관, 비효율적인 거대 관료주의, 일반화된 소규모의 부정부패, 가난, 전력 부족, 교통문제, 배급제, 힘든 일상생활, 특정 자유의 제한)을 안고 있지만, 성공했기 때문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천만 명의 무산계급들은 빼놓지 않고 그것을 언급한다. 이곳저곳에서 혹은 라틴아메리카,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 수많은 남녀들이 쿠바 모델이 성취한 것과 같은 사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위하고 투쟁하며 심지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지금의 쿠바 대통령이 사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 권력구조(정부나 공산당 그리고 군부)상 그 누구도 피델 카스트로 같은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 권위는 새로운 쿠바 정부의 수립자이며 혁명 이론가이고, 성공한 사령관이며 46년 전부터 쿠바의 정책을 이끄는 당사자라는 네 개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몇몇 분석가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처럼, 현재의 체재는 이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하는 것이다. 동유럽은 외부에서 강요된 체제이고 민중 대부분이 혐오한 체제였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붕괴했다. 쿠바에서는 동유럽과 비슷한 변화과정을 목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비록 피델 카스트로의 정적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쿠바인들은 대부분 혁명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이다.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것과 반대로, 이런 충성심은 미국 제국주의 혹은 병합주의 야심에 반대한 역사적 저항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에 근거한다.

카스트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찬성하든 안 하든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정의를 위해 열렬히 투쟁했고, 지구상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협력한 세계적 인물들의 판테온쪵에 이미 한 자리를 예약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한마디 덧붙이자면 2003년 3월과 4월에 70여 명의 비폭력적 반체제 인사들에게 장기형을 선고하고, 배를 납치한 3명의 납치범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에 대해서는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르다―나는 수많은 서양 언론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대단한 지도자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고, 그의 일생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큰 전투와 그 이후 몰두하던 전투에 관해 직접 증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델은 항상 많은 연설을 하지만, 인터뷰를 그다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50년 동안 한 긴 인터뷰는 네 개밖에 안 된다. 자니 미나(도스) 프레이 베토Frei Betto, 토마스 보르게와 했다. 거의 일 년을 기다린 끝에, 그가 내 제안을 수락했으며 나와 다섯 번째 긴 인터뷰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는 그가 허락한 것 중에서 가장 길고 완벽했다.

나는 마라톤을 뛰듯이 철저하고도 심도 있게 준비했다. 수십 권의 책과 기사,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으며, 쿠바혁명의 복잡한 여정을 나보다 훨씬 잘 아는 많은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은 내게 질문들의 주제와 비판할 점을 제시해주었다. 이 책에서 피델 카스트로에게 던진 질문 중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 덕택이다.

이 인터뷰의 일부를 촬영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조용하고 편안하며 어스름한 그의 개인 집무실에서 작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를 알고 싶었다. 그가 어떻게 일상의 업무를 보고 일상사를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그때까지 나는 쿠바에서 취재를 하거나 아바나 도서전시회 같은 행사에 참여했을 때 잠시나마 그와 만났다.

그는 내 생각을 받아들였고, 며칠 동안 쿠바의 산티아고와 올긴, 아바나뿐만 아니라 에콰도르와 같은 외국 여행에도 초대했다. 차나 비행기 안에서 혹은 걷거나 점심을 먹거나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당시의 뉴스와 그가 겪어온 일들 그리고 현재의 관심사 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주제에 관해 녹음기 없이 대화했다. 나는 후에 그때의 대화를 덧붙여 재구성할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피델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매우 수줍고 교양이 있으며 신사적이다.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으스대지 않고 소박하게 말한다. 옛 시대의 예절 바른 태도와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중하고 공손하게 대한다. 특히 자신에게 도움을 주거나 협력하는 사람들 또는 자기 경호원들에게 그렇게 대한다. 그들이 기가 죽지 않도록 그들보다 더 고상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한 번도 그가 명령조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그는 위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그의 목소리 이외에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크건 작건 간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비록 정부와 당이 이끄는 정치계에 자문을 구하고 정치계 인사들을 아주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바로 그이다.

체 게바라가 죽은 후, 현재 활동 중인 권력단체에서 피델보다 더 지적인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외롭고 고독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아주 친한 친구도, 그의 지성에 걸맞은 지적인 친구도 없다. 내가 본 바로는, 그는 매우 검소하고 거의 스파르타 사람들처럼 산다. 사치품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으며, 가구도 검소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은 소탈한 건강식이다. 그리고 신부나 병사처럼 제복을 입는다. 심지어 그의 정적들도 피델이 지위를 이용해 부를 쌓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 지도자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의 일과는 일주일 내내 해가 솟아오르는 새벽 5시나 6시경에 끝난다. 한두 번쯤 우리는 대화를 밤 2시나 3시에 중지해야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살짝 웃으며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네 시간가량 잠을 잔다. 그리고 가끔 낮 시간에 아무 때나 한두 시간 더 자기도 한다. 여행, 모임, 방문, 회의 참석이 쉴 틈 없이 강도 높게 지속된다.

그의 보조자들은 모두 서른 살쯤 된 총명한 젊은이들이다. 일과가 끝날 때면 그들은 녹초가 된다. 그들은 여든 살이 다 된 지칠 줄 모르는 ‘사나이’의 리듬을 따라잡지 못하고 피로에 지쳐 선 채로 잠을 잔다. 피델은 메모나 보고서, 전문電文, 국내외 언론 뉴스, 통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 요약본, 전화통화, 국내 설문으로 얻은 여론 등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그의 호기심은 끝이 없고, 한시도 쉬지 않고 생각하며, 자문위원들을 열심히 움직이게 한다. 다시 말해 전혀 독단적이지 않다. 독단이나 규율 혹은 법칙이나 체계, 밝혀진 진리는 피델의 성격과 정반대이다. 그는 본능적인 위반자이다. 그는 영원한 반항아이다.
그는 새로운 전투를 벌이면서 작은 참모본부, 즉 그의 보조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의 대표로 행동하면서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나 혁명을 한다. 그는 항상 생각하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과감하다. 그래서 거대하지 않은 생각들은 그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일단 계획이 논의되고 결정되면 어떤 장애물도 그를 막지 못한다. 그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골De Gaulle은 “관리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델도 똑같이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는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믿는다. 그의 열정은 의지를 움직인다. 거의 마법처럼, 그의 생각은 우리 앞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말은 현실이 된다. 그의 카리스마는 바로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피델 카스트로는 인상적일 정도로 키가 크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는 국민과 대화를 하는 데 천부적인 솜씨를 지녔다. 청중의 관심을 포착하고 청중을 지배하며 그들을 감동시키고 열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게 만드는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피델을 아주 잘 아는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가 대중에게 말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항상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시작하고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도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어떤 빛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이용해 조금씩 대중을 파고들다가 마침내는 그들을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영감, 그러니까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눈부신 은총입니다. 단지 그런 순간을 살아볼 영광이 없었던 사람만 그것을 부정합니다.”

수도 없이 언급됐지만, 그는 웅변술이 뛰어나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공개석상에서 한 연설이 아니라, 식사 후에 나누는 담소이다. 그의 입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충격적인 말들이 쏟아진다. 말의 홍수 속에서 발레리나 같은 섬세한 손짓을 하며 공기를 너울거리게 한다.

그는 자신에게 깊이 뿌리박힌 역사의식과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극단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 어떤 사회주의나 노동자 운동의 주역들보다 쿠바 독립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를 많이 인용한다. 마르티는 피델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그래서 피델은 마르티의 작품을 읽고 또 읽는다. 그는 학문들과 학문적인 탐구를 좋아한다.

또한 의학이 발전되기를 뜨겁게 소원한다. 의학의 발전은 아이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수천 명의 쿠바 의사들이 많은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동정심과 국제주의적 협력으로 똘똘 뭉친 그의 야심은 전 지구에 건강과 지식, 의학과 교육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과연 터무니없는 꿈일까? 문학의 주인공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돈키호테이다. 그는 돈키호테를 자신의 고귀한 희망과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여긴다. 이로써 그는 “위대한 혁명은 오로지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그는 정확하고 엄밀하며 꼼꼼하다. 어떤 주제든 그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산술적인 계산을 한다. 그에게 대충은 없다. 그는 아주 세세한 것도 기억한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훌륭한 역사학자인 페드로 알바레스 타비오Pedro ?varez Tab뭥가 종종 함께 있었는데, 그는 어떤 자료나 어떤 이름 혹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의 과거이며(이를테면 “내가 몬카다 병영 습격 전날, 몇 시에 시보네이 농장에 도착했습니까?”라고 물으면, 페드로는 “몇 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니면 과거의 사건에 관한 주변적인 것(이를테면 “체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던 볼리비아 공산당의 2인자가 누구였습니까?”라고 물으면 페드로는 “○○입니다”라고 대답했다)에 관한 것이다. 페드로는 또 다른 피델처럼 피델과 관련된 것을 기억했다. 놀라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으며 굉장히 정확했다.

기억력이 풍부해서 피델은 가끔씩 종합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생각은 나무 같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 그리고 가지처럼 뻗어나간다. 모든 것이 서로 관련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다른 이야기들을 덧붙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생각이나 이런저런 상황들 또는 인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제와 비슷한 다른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렇게 그는 중심 문제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잠시 이야기의 주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델은 다시 돌아와서 여태 해오던 중심 생각을 이야기했다.

총 100시간이 넘게 대화를 하는 동안 피델은 한순간도 우리가 접근하는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범위나 한계를 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식인이다. 그래서 토론이나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그것이 필요하다. 요구하며 북돋운다. 그는 풍부한 논증을 바탕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수사적인 말솜씨를 보여준다. 언제라도 논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무섭고 유식한 논객이다. 악의와 배신만이 피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책에 어떤 질문이나 주제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인터뷰를 한 내 자질이 부족한 탓이다. 피델은 자신의 긴 정치 경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지적인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어떤 대화들은 독백 같았다.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은 충분한 타당성을 갖고 말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런 대화는 논쟁을 벌이거나 토론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기자는 정치인이 아니다―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인터뷰 대상자의 정치적이자 전기적인 여정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조금도 그의 사생활이나 감정적인 삶, 그의 아내와 아들들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인터뷰 대상자에 대해 일정한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인들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들 역시 사생활이라는 범할 수 없는 영역을 지닐 권리가 있다.

2003년, 오랜 시간 동안 행해진 그 작업은 이 책의 초고草稿가 됐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출판할 정도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동안 삶과 사건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2004년 9월, 나는 다시 아바나로 돌아가 피델 카스트로와 만났다. 우리는 그때 처음 나눴던 대화에서 몇 가지 주제를 구체화하고 완성했다. 그리고 2005년에 또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이 책을 현실화하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2005년 말까지 우리의 대화에서 개진된 몇 가지 주제가 어떻게 발전됐는지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그런 글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삽입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고 소련은 해체됐으며,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자신의 국가에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피델 카스트로의 꿈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는 더 평등하고 건강하며 많은 교육을 받고, 배타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으며, 완전한 지구촌 문화를 지닌 그런 사회를 원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뇏ez와 긴밀히 연합하면서 그의 신념을 공고히 했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지금, 그는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국내 부패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 최전선에서 전투를 이끌고 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사상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냐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
파리, 2005년 12월 31일
---본문 중에서
내 인생의 특별한 상황들이 나를 그렇게 반항하도록 만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했고, 그 결과 반항정신을 키운 것 같아요. 저쪽에서는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 생각해보면 나는 이유가 많은 반항아였고, 사는 동안 계속 반항아가 되게 해준 내 인생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죠.

나는 우리가 태어난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과거보다 더 잘 이해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고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내 투쟁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 3.반항아 되기(122p)

성난 병사들은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그들이 5명분의 무기를 발견했다는 겁니다. 무기를 발견한 것은 큰 사건이었죠.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저쪽으로 가고, 대위는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위는 계속해서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소리치지는 않았습니다. 크게 소리쳐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가만히 있어라, 병사들. 서두르지 말라. 진정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미친 병사들은 포로를 잡으면 사살해버리곤 했거든요. 그는 마침내 병사들의 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쏘지 마. 사상은 사살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만은 기억납니다.
--- 6.역사가 나를 용서할 것이다(184p)

우리는 정치적이자 군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비정규전을 치러야 하는지 직관으로 알았습니다. 반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는 우리에게 그 경험을 보여주었습니다. 헤밍웨이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사실주의적 문체로 아주 분명하고 깨끗하게 모든 걸 보여주거든요. 읽은 것을 잊기 어려웠습니다. 헤밍웨이는 독자를 그 잔인한 스페인 내전의 무대로 데려가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직접 겪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살면서 그런 게릴라의 삶을 잘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책이 매우 친숙하게 여겨졌죠. 우리는 그 책을 참고하면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게릴라가 됐을 때에도 그랬죠. 그리고 우리는 윤리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에게 글을 깨우치고 학교에 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 우리가 한 것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이룩한 나라는 제3세계,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의 그 어떤 국가도 없습니다. 구걸과 실업은 뿌리 뽑혔습니다. 악습들과 마약 소비, 노름 역시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구걸하거나 동냥을 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영양실조에 걸렸거나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혹은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도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 25. 오늘날의 쿠바 중에서(582p)
---237p 9.게릴라전의 교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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