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일본의 소비사회가 확장되면서 지금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오타쿠들은 좋아하는 것이나 흠뻑 빠져 있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공기를 읽지 않고 발언합니다. 예를 들어 요즈음의 부녀자(腐女子)는 눈앞의 사람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쵸로마츠가 얼마나 카미야 히로시의 새로운 경지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상대가 그 애니메이션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관계없습니다. 아마도 오타쿠는 일본 근대사회에 처음 등장한 ‘공기를 읽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외부에 강렬하게 좋아하는 대상이나 소중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공기를 읽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저 역시 ‘공기를 읽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불쑥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그 이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모릅니다. 오타쿠적인 기질을 가지면 일본 사회의 공기 바깥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의 테마이기도 한 ‘오타쿠로 본 현대 일본 사회’, 아니 ‘오타쿠이기에 보이는 현대 일본 사회’라는 것을, 일종의 정신사로서 그려 보고 싶습니다.
---「오타쿠를 통해 고찰하는 일본 사회」중에서
이 작품을 독해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하루히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히로인 하루히는, 1970년대나 1980년대라면 반드시 반에 한둘은 있던 UFO나 초능력을 매우 좋아하는, 이른바 오컬트 팬입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당시였다면, 전생 전사로 각성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루히는, 당시의 오컬트 팬들과 동일하게 이 소비사회의 ‘끝나지 않는 일상’을 따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물건은 있어도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이 변함없는 세계의 바깥으로 데려가 줄 UFO나 초능력을 원합니다. 그런데 하루히 본인에게 신과 같은 능력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욕망을 실현할 수 있기에, 정말로 우주인·초능력자·미래인이 오게 되고 (하루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고교생활을 하며 사이좋게 지내게 됩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본심」중에서
정치 운동에서 좌절을 겪은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은 1970년대 이후 크게 변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를 바꾼다’에서 ‘자신을 바꾼다’로의 전환입니다. 반전(反戰) 운동으로도 마르크스주의로도 세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을 믿을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바꿔서 세계를 보는 법을 바꾼다, 라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1960년대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반체제적인 카운터 컬처, 그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히피 컬처입니다. 탈국가적인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자연숭배와 약물의 힘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법을 바꾸려 했습니다. 이 문화가 바다를 건너 전파되고, 세계 전체가 ‘정치’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젊은이 취향의 서브컬처는 존재했고 대학생은 도시 문화의 전담자였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지적으로 첨예한 젊은이들이 형성하는 도시 문화의 중심이 정치 운동에서 서브컬처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그 후의 30년간은 서브컬처에 대해 논하는 것이 곧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에 대해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20세기 후반은 ‘젊은이의 시대’였지요.
---「서브컬처 시대의 도래」중에서
지난 시간까지는 1980년대의 소비사회를 ‘물건은 있어도 이야기가 없는’ 시대로 받아들인 서브컬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이 판타지의 기능에 주목했고, 당시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그린 냉전기 최종 전쟁에 대한 상상은 그 배출구로서 수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물건은 있어도 이야기가 없는’ ‘지금, 여기’의 ‘끝나지 않는 일상’을 긍정하는 사상도 서브컬처에 유입됩니다. 그 무대가 된 것은, 이전에 다뤘던 다카하시 루미코의 ‘우루세이 야츠라’로 대표되는 러브코미디의 계보입니다.
---「1980년대 러브코미디의 공기와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중에서
그런 아키모토 야스시가 2005년에 착수했던 것이 AKB48입니다. 다만 처음에는 거의 주목 받지 못했고, ‘아키모토 야스시가 또 뻘짓하고 있네’라고 여겨지고 있었지요. AKB는 아키하바라에 극장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첫날의 손님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AKB48은 어떻게 브레이크 할 수 있었나」중에서
초대 ‘건담’에서부터 ‘에반게리온’에 이르기까지,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소년들은 평범한 고민을 품고 있는 ‘내면이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녀를 쟁취하고 싶다’ ‘성인 남자가 되고 싶다’ 같은, 그런 사춘기의 고민과 과잉된 자의식을 안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소년을 그린 로봇 애니메이션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반게리온’과 동일하게 1995년에 방영된 ‘신기동전기 건담W’입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을 새로 쓴 1995년의 ‘신기동전기 건담W’」중에서
그러나 젊은 층의 서브컬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곧 사회를 말하는 것이던 시대가 끝나려 합니다. 1970년대에 미국 서해안에서 발흥한 히피 컬처가 변화의 발단인데, 이 문화가 지금의 세상을 구동하는 사상인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를 낳습니다.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의 대표격인 존재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입니다. 그로 상징되는 것처럼, 미 서해안 IT업계 개척자의 뿌리는 1970년대 히피 컬처에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지요. 정치 운동에 의한 혁명은 실패했다. 세계를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의식 쪽을 바꾸자. 이렇게 해서 약물, 오컬트, 뉴에이지 등의 새로운 문화가 탄생합니다. 그 안에 ‘사이버스페이스’도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러한 움직임이 마지막 프런티어인 미국 서해안에서 발흥했습니다. 미 대륙 개척의 역사는, 대서양을 건너 동해안에 이주한 영국인들이 프런티어를 찾아 서부로 나가면서 시작됩니다. 지금의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는 미국 대륙의 서쪽 끝이며, 그곳에서 더 이상 나아갈 새로운 땅은 없습니다. 여기서 꽃핀 히피 문화는, 막다른 현실 세계가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프런티어를 갈구했습니다. 당시 발흥하고 있던 컴퓨터 컬처에 합류해서 사이버스페이스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지요. 당시에는 정보기술이 이 정도로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어디까지나 가상공간이며, 다른 종류의 판타지 세계였습니다. 그러다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진보에 의해 새로운 사상이 탄생합니다. 사이버스페이스와 글로벌한 자본주의 경제가 결합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보면 명확한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은 국경선과는 관계없이 활동 영역을 확장해 나갑니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초국가적인 영역이 글로벌 자본주의와 결탁하면, 마켓을 통해 세상을, 그것도 로컬인 국가를 넘어 글로벌한 시장에서 세계 전체 규모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일종의 유토피아 사상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입니다.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의 등장」중에서
그리고 2년 후인 2012년, 도쿄 돔에서의 콘서트와 그 다음날 AKB48 극장 공연을 끝으로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합니다. 원래 AKB는 아키하바라의 작은 극장에서 시작할 때, 도쿄 돔에서 콘서트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요. 아키하바라와 도쿄 돔이 있는 스이도바시는 꽤 가깝습니다. 거리로는 1830미터 정도인데, 이 1830미터의 벽을 넘는 것을 목표로 하던 AKB가 마침내 도쿄 돔에서 콘서트를 하고, 초기의 에이스인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하면서 첫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로니컬하게도 AKB가 도쿄 돔에서의 콘서트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AKB = TV에 만날 나오는 아이돌’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라이브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돌상을 내걸었지만, 브레이크 하고 나서는 예전의 ‘미디어 아이돌’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당초의 정체성이 희미해진 AKB는 한동안 정체기를 맞게 됩니다.
---「돔 콘서트와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으로 맞이한 첫 클라이맥스」중에서
노기자카와 같은 ‘사카미치 시리즈’로 수평 전개했던 케야키자카46(?坂46)도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케야키자카는, 오래간만에 아키모토 야스시의 작업이 아이돌 오타쿠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노기자카의 얌전한 아가씨 느낌에서 돌변, ‘전투적’인 이미지로 변했고, 유니폼도 군대 느낌의 다크 그린을 택했습니다.
---「케야키자카46 ‘사일런트 머조리티’에 담긴 대중 비판의 의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