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1) 자연의 정과 향수로서 이야기되었고, (2) 국가와 관련시킴으로써 자명한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가게야마는 ‘고향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마땅한 정을 끊을 수 없는 것은 자연의 도리이다’라고 말하며 ‘고향은 우리 모두가 함께 태어나고 함께 성장하고 우리 모두의 부모가 계신 곳, 우리 모두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땅이다.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고향이 국가와 유사한 것으로 이야기되어, ‘애향심’과 ‘애국심’은 ‘근원’이 같다고 지적되고 하나의 고향--하나의 현--하나의 국가라는 동심원이 상정되었다. 동심원의 원점으로는 종종 ‘공공심’이 언급되었다.--- p.114
문명=근대적 행위의 규범을 보여준 것으로는 1872년부터 순차적으로 공포된 이시키카이이 조례가 유명한데, 법령을 비롯해 저작활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문보도를 통해 야만이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는 야만이 (1) 전근대적인 관습이나 행동, (2) 자기 내면을 억제하지 못하는, 거칠고 난폭한 행위, (3) 근대적 지식=문명의 결여로서 제시되었다.--- p.125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고다마는 구미의 문명을 기준으로 하여 일본을 그것과 일체화시킨 다음에 문명 밖의 암흑의 지역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 지역이 암흑인 것은 울창한 밀림과 맹수의 존재라는 자연의 ‘과잉’과 함께 ‘무지’하고 ‘기묘’(=‘결핍’, ‘일탈’)한 ‘토인’이라는 존재에 의한 것으로, 암흑을 논함에 있어서 ‘인종’의 비중이 높다. 매리 프랫이 말하는 ‘제국의 시선’이다. (…) 식민지 대만과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제국의 시선’이 향해, 암흑을 일본 밖으로 전이시킬 때에는 인종주의와 식민지주의에 근거한 ‘시선’이 나타난다. 국민국가 일본이 스스로를 문명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병행하여 일본이라는 의식의 형성에 따른 인종주의와 식민지주의가 20세기 초두에 새로운 암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국민화라는 작위에 의한 새로운 암흑은 유럽 문명이 이계라고 간주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와 식민지로 구성되고, 그 지역으로 설정되어갔다.--- p.157
『소년세계』는 전쟁, 역사, 언어와 시, 인종을 거점으로 삼아 ‘우리들’/‘그들’을 구분하고 ‘우리들’의 공동환상과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우리’(베네딕트 앤더슨)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동시에 『소년세계』는 주로 ‘소설’란과 ‘소녀’란을 통해 ‘우리’ 내부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1) 차이의 존재에 대한 제시, (2) ‘배려’의 가치화, (3) 차이 창출의 배경으로서의 학력사회, 이 세 각도에서 『소년세계』가 제시하는 ‘우리들’ 내부의 차이를 고찰해보자.--- pp.180~181
그러나 간토 대진재 때 도쿄와 그 근교에서 도시 민중이 자경단을 결성하고 조선인들의 폭동이라는 유언비어를 믿어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한 일은 민중의식의 저류에 흐르는 내셔널리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도시 민중소요의 담당자이고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추진력이었던 직공·직인·도시잡업자들이 지역의 ‘유지(旦那衆)’―지주, 건물주, 유력상인, 관리직―에게 ‘이용’당해 손을 적셨다. 도시 민중 속에는 식민지영유국이라는 대국의식과 조선인노동자의 진출로 인해 직장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터에, 관헌에 의한 유언비어의 전파·방치 아래에서 그들이 가해자로서 등장했던 것이다.--- p.235
이렇게 모더니즘 안쪽으로 내셔널리즘이 혼입되는 한편 내셔널리즘도 모더니즘에 대응하여 그 요소를 포섭한다. 모더니즘이 생활에 침투함과 동시에 거기에 곧바로 대응하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이 대두하는 것이다. 국체 관념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놓쳐서는 안 되지만, 진재 후의 민중의식은 경제대국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도시문화가 발전하는 가운데 그러한 번영에서 소외되고 공황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아 경제적·정신적·육체적으로 피페해지고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갖는 이 내셔널리즘으로 규정되고 특징지어진다. 번영하는 국가경제의 한켠에서 식구들이 모두 벌어야 가까스로 생계를 이을 수 있는 민중의 경제상태가 이러한 내셔널리즘의 모태였다. 이 ‘새로운 내셔널리즘’은 국가보다 오히려 자본, 즉 매스미디어에 의해 폭넓게 확산되어간다. 1925년 1월에 창간되어 74만 부가 매진된 잡지 『킹』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p.241
‘미담’은 이렇게 해서 은폐를 동반하는데, 이것을 서술의 수준에서 말하자면, 조선인은 항상 ‘이야기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등장하고, ‘말하는 주체’로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토 대진재에서의 조선인의 체험은 항상 ‘대상’으로 취급받는 데에 그쳤다. 학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제목으로 한 김건의 작냇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규정되어 봉인당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p.303
‘사변’은 사람들의 동원을 필요로 한다. ‘사변’하의 동원 형태로는 두 가지가 보이는데, 둘 다 지역의 조직을 매개로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변’에 동반되는 ‘군국’을 핵으로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도시화’에 동반되는 ‘모더니즘’에 의해 초래된 가치를 핵으로 한다. 전자는 방호단을 통한 방공연습, 후자는 위생조합에 의한 ‘건강주간’과 결핵예방국민운동으로 전개되어, 각각 도시의 민중을 통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동원으로 끌어냈다. 방공연습을 벌이는 방호단은 1932년 4월 3일에 나온 ‘요코하마·가와사키 비상변재 요무 규약’에 의거하여 설립된다.--- pp.385~386
근대 일본의 도시사 연구의 실증성은 풍부해졌지만, 새로운 과제의 설정에 대해 고심하면서 다시 새롭게 도시사 연구의 존재기반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근대일본도시사 연구가 이렇게 착종하는 커다란 부분은 ‘지금’의 도시공간에 대한 파악이 곤란하다는 데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도시공간은 활황을 띠고 ‘혁신’의 기운이 꿈틀대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의 도시공간은 ‘보수’의 거점이고 시니시즘이 만연한 것처럼 보인다. 도시공간의 활력을 어떻게 불러일으킬 것인가, 또 그러기 위해서 근대 도시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포함해서 도시사 연구와 도시공간에 대한 ‘지금’의 이러한 관찰이 필자가 이 논문집을 묶으려고 생각한 내적인 계기이다.
--- pp.467~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