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독립적 사고’를 요구한다. 이 책은 바로 여러분 자신에 관한 책이다. 사기꾼이나 이상한 사람 혹은 진지하지만 망상에 빠진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피하려면, 다른 사람의 뇌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뇌에 의지해야 한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이나 믿을 만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막상 기묘한 주장이 눈앞에 닥쳤을 때에는 현명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문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문을 쾅 닫고 단호하게 거부할지 판단하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길이다.
지금도 이상한 주장이나 특이한 개념, 위험한 생각, 엉터리 믿음이 우리 주위에 수많이 널려 있다.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주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모든 주장에 대응하는 반응을 미리 준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훌륭한 회의론자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지혜를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주장에 잘 대응할 수 있다. --- p.9~10
회의론을 받아들이는 시기는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선택하는 게 좋다. 그러니 이번 열차를 놓치지 말고 당장 올라타도록 하라. 먼저 이상한 주장과 믿음을 좀 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부터 몸에 붙게 하고, 이상한 주장을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기 전에 질문을 던지고 증거를 요구하라. 나이가 어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어린 시절이 중년이나 노년 시절보다 덜 중요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혼자서 직접 올바른 생각을 하려는 노력을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 터무니없는 생각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어른도 잘못을 흔히 저지르며, 여러분도 이미 훌륭한 뇌를 갖고 있다. 그러니 그 훌륭한 뇌를 잘 쓰도록 노력하라. 만약 여러분이 어른이라면, 이제 와서 사고방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라. 회의론적 사고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 p.38~39
문제는 뇌가 많은 일을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점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빨리 아는 게 좋다. 훌륭한 회의론자가 되려면 머릿속에 있는 이 기묘한 존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기본적인 것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각과 기억의 작용 방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하늘에서 외계인의 우주선이나 복도에서 유령을 볼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또 그 사건을 더 자세히 기억하고 그것이 확실하다고 믿는다. 이들은 자신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과정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떤 주장이나 증거를 평가할 때 우리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짓말이나 엉터리 믿음에 속아 인생을 낭비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이야기가 우리 뇌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인지 편향, 기억 결함, 환각 등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믿음 50가지』라는 책을 쓰기 위해 과학 연구를 조사하고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머릿속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기이한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깨달음은 이 책을 쓰는 데 영감을 주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얼른 이 사실을 알아야 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특이한 상황에서 뇌가 우리를 어떻게 속이는지 매일 더 많은 것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은 뇌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며, 그것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 p.70~72
‘부주의 맹시(不注意盲視, 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부주의 맹시는 운전을 하면서 휴대 전화로 통화하는 게 왜 안전하지 않은지 설명해준다. 운전자는 눈을 크게 뜨고 앞의 도로를 보고 있지만, 뇌가 전화 통화에 한눈을 파는 바람에 바로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트럭이나 차 앞으로 빠져나가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샤브리(Christopher Chabris)와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는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부주의 맹시가 우리의 인식을 얼마나 쉽게 마비시키는지 보여주었다. 만약 직접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면, 이들의 웹사이트(www.theinvisiblegorilla.com/videos.html)를 방문해 짧은 비디오를 보고 난 다음에 아래 글을 읽기 바란다. 이 실험에서 사이먼스와 샤브리가 밝혀낸 사실은 많은 반복 실험을 통해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쉽사리 믿기 어렵다. 이들의 비디오에는 두 팀 선수들이 농구공을 드리블하거나 패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팀은 흰색 상의를 입었고, 다른 팀은 검은색 상의를 입었다. 피험자들은 비디오를 보면서 흰색 상의를 입은 선수들이 코트를 돌아다니며 공을 패스하는 횟수를 세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것은 아주 쉬워 보인다. 그런데 피험자들이 패스 횟수를 정확하게 세려고 집중하고 있을 때, 고릴라 복장을 한 여성이 화면 가운데로 걸어나와 자기 가슴을 두드린 뒤에 빠져나간다. 이 장면이 아주 잠깐 동안만 비쳤다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고릴라는 9초 동안 화면에 등장한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패스 횟수를 물은 뒤에 비디오에서 뭔가 이상한 걸 보지 못했느냐고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전체 피험자들 중 약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눈앞에서 9초 동안이나 어슬렁거린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공에 너무 집중하느라 그들의 뇌는 고릴라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들의 눈이 주의 깊게 좇던 공이 고릴라 바로 앞으로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부주의 맹시 현상인데, 이상한 결함이 아니라 정상적인 뇌의 특징이다. 우리는 늘 모든 것에 주의를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뇌는 특정 사물에 집중하면서 대신에 나머지 풍경을 등한시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하다. 부주의 맹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변의 모든 것을 지각하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부주의 맹시 실험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고릴라처럼 중요하고 특이한 세부 내용을 너무나도 쉽게 놓친다!
--- p.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