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지상에 세워진 이래 언제나 주님의 몸을 괴롭혀온 멈추지 않는 위협과 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협과 도전은 초대교회로부터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복음을 왜곡하여 온 치명적인 오류는 외형적인 옷을 갈아입었을 뿐, 아직도 그 망령이 존속하고 있습니다. 이 오류는 언제나 동일한 독소를 가지고 구원의 복음을 왜곡하려 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오류의 두 사조로서 율법주의(legalism)와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입니다.
극단과 극단이 통하듯, 이 상반되고 반제적인 두 신학적 오류가 교회에 받아들여질 때, 동일한 비극을 일으킵니다. 즉, 두 가지 독소가 교회의 몸에 스며들면, 이것은 진정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양들을 기만하고, 그들이 들어가려는 영생의 문을 가로 막고 맙니다. 즉,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은 예수님과 그의 신실한 종들이 전하여준 '복음'을 왜곡하고, '다른 복음'(갈 1:8)을 만들어 이를 따르는 자들에게 저주가 되게 만듭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신음하는 이유들 주에서 이 독소가 배제 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도덕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서 있는 토양으로서 사회도 도덕적 위기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세워진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보다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도덕적 위기는 교회로 하여금 또 다른 극단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도덕적 위기를 율법주의 내지 도덕주의를 택하여 타개하려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타락에 신물을 느낀 성도와 교회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율법주의를 택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실제로 이러한 경향이 한국교회 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신학계 안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E. P. Sanders, J. D. G. Dunn, N. T. Wright 와 같은 신학자들이 주창한 바울에 관한 새관점, Norman Shepherd 의 단일언약 안에서 주장되는 칭의론, 그리고 페더럴 비전 신학 등은 종교개혁 무용론 내지 그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오직 은혜'의 교리를 폐기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미-펠라기안적인 구원론, 즉 율법주의적 구원론을 함의한 신학을 전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은혜'와 '믿음'에서 '오직'(sola) 을 삭제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은 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한 그 교리와 유사한 것들입니다.
주님과 그의 신실한 종들이 전해준 복음은 방종도 율법주의도 아닙니다. 혹자는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거룩한 삶을 가로 막는 것처럼 비난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오해해 이들의 신학과 경건의 삶을 싸늘하고 도덕적인 엄격주의로 이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이며 종교개혁을 전혀 그 실재와 다르게 곡해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의 유산을 너무나 축소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신학과 특히 개혁신학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치밀하고 넓고 풍요로운 신학적 지경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개혁신학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강조했지만,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이 경건한 삶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둘이 조화롭게 연결되도록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오직 은혜'가 순종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직 믿음'이 경건한 생활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혁신학은 은혜와 경건한 생활, 믿음과 순종을 '오직'이란 모토를 강조하면서 모순되지 않게 가르치는 풍성한 가르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은혜와 경건한 삶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가르침들을 충실히 전수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부터 거룩한 삶의 당위성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혁신학은 바로 오직 은혜와 경건, 오직 믿음과 경건을 이어주는 풍성한 가르침의 체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개혁신학은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구분합니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은 성도의 선행을 언제나 옆에 둡니다. 개혁신학은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자가 왜 경건한 삶,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풍성한 신학적 해설과 체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경'만을 모토로 삼은 종교개혁과 개혁주의자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과 헌신에서 비롯된 유산입니다. 이들은 성경이 가르치고자 하는 복음의 진리를 발견했고, 이것을 신학적 체계를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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