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현상은 지나갔다지만 먼지 바람이 꽤 부는 날씨였다. 창밖가득 버드나무의 허연 먼지솜털이 수없이 날리고 있엇다. 먼지속에 또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가.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서 허공 속에 버드나무 솜털을 한꺼번에 흩어 놓는 바람에 시야가 흐려졌다. -먼지 속의 나비 끚맺음-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여자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액을 뒤집어 쓰면서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인다는 미용사의 호들갑에 따라 웃다가 그녀는 문득 눈가의 주름이 파상형으로 잡힌 채 웃고 있는 자기의 얼굴이 '젊다'가 아니라 '젊어 보인다'고 표현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자기가 젊게 보였던 것은 실제 육체가 젊어서가 아니고 젊게 보이는 데 자신감을 가졌던 스스로의 분위기 덕분이었다는 것을 한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큰 절이 아니라 그런지 영추사에는 불이문이 없어. 불이문? 응. 분별을 떠난 절대의 경지야. 해탈문이라고도 하고. 그 기억이 맞다면 아마 불전까지 가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머릿속에 그가 사랑을 맹세했던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영추사의 수장을 애도할 자격도 없었다. 애도할 마음도......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취할수록 남자는 점점 여자가 미웠다. 사랑하는 너, 결국 이렇게 떠나려 하고 있구나 넌 혹시 사랑이 양지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니 그래 우리는 햇살 속에서 깔깔댔지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어두워,그렇다고 완전히 어두워져 버린거니? 해가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할 순 없어? 너는 네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고 우리의 사랑을 네 인생에 별 볼일 없는 주변 사건으로 내팽개치는 모양인데 인마 사랑은 그게 아냐
--- 본문 중에서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많았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버스나 전동차에 우산을 두고 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의 우산을 갖고 따라내리는 남자는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칠칠찮다고 투덜댔다.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분이었나봐요. 당신이 좋아할 만한 남자군요. 그녀는 안심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 동안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가 두려웠던 게 아닐까 하고.
--- 본문 중에서
지금 그녀를 끌고 가는것은 어린이잡지를 읽던 마루였다. 그녀는 '믿거나 말거나'라는 페이지를 읽고 있다. 어린이여러분, 아프리카의 어떤 원시인들은 숫자를 둘까지 밖에 세지 못한대요. 하나, 둘, ......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세는지 아세요? '많다'예요. 셋이상은 무조건 많다고 하는 거래요. 셋 부터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나 봐요.
--- 본문 중에서
이중주
가만 안둘거야. 인혜는 그말이 마음에 든다. 그말이 현석의 과장된 감상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과장된 감정에 유치함을 느끼던 그녀가 술을 좀 마셨기로 현석의 순정에 감동한 것일 리는 없다. 그 말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인혜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현석의 거친 말투 속에 깃든 파탄적 예감 같은 것이 시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너무 오랬동안 틀 속에 갇혀 틀지기 노릇을 해왔다. 그러느라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하는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마구 잘라냈다. 그녀 혼자서 사지를 벌려 네모반듯한 가정이란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가족이라는 것을 키워갔다. 가족, 결혼... 그것을 지키기위해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닳아 없어져간다. 원래 그 공간은 부부라는 두 쪽의 지붕이 맞닿아 안정된 구도로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녀 혼자만 풍상에 시달리며 사지가 찢기도록 그 공간을 지키느라 안간힘이었던가.
그렇게 해서 만든 그 공간은 또하나의 틀이 될 뿐이다.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내 딸을 '나'라는 틀 속에서 키워 또다시 하나의 틀로 만드는 것이, 그런 체념적인 답보가 여자들의 삶인가. 인혜는 취했다. 취했으므로 지금 전혀 자기답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자기답지 않은 방임, 자기답지 않은 과장, 그리고 자기연민.
--- 본문 중에서
내가 서른일곱이란 나이에 등단한 것을 두고 한 선배가 덕담을 해준 적이 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알고 시작했으니 더 좋지. 자기 소설 속에서 치기를 보는 부끄러움은 면할 수 있잖아.'
그러나 인생에서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모양이다. 스스로 안심이 될 때까지 품안에서 충분히 묵히기도 전에 겁없이 세상에 내놓는 것 역시 치기의 한 형태일 테니까. 특히 나 자신의 기질적인 감정 기복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지나친 긴장이 불연속선으로 이어져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 보기에 아슬아슬하다. (p. 358)
--- 본문 중에서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떠밀렸다고는 하지만 그런 내가 박대리와 함께 병원에까지 그녀를 따라왔다는 점은 도무지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주어 담뱃불을 비벼 껐다. 내키지 않은 자리에 가게 되면 반드시 내키지 않은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전에도 몇 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