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 영감은 그만 말문이 막혀 돌아섰다. 진동하는 서울 냄새에 내장이 뒤집히고 있었다. 이제 냉수 아니라 콜라 할애비를 준대도 받아마실 리가 없었다. 목이 말라 이대로 거꾸러져도 그런 역한 냄새를 맡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칼갈이를 생업으로 삼아 서울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며 살아온 것이 어느덧 6년 가까이. 그동안 겪은 고생, 당한 서러움도 많았지만 타향이니까, 가난하니까 하는 식으로 그래도 자위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복천 영감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모든 서울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니고 있는 그 몰인정이요, 매정함이었다. 언제나 차갑고 싸늘하고 냉정해서 삭막하기 엄동설한 같은 인심에 부딪힐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울분 같은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약삭빠르기 다람쥐 같고, 뻔뻔스럽기 쇠가죽 같은 낯짝인가 하면, 능청떨기는 백여우요, 억척스럽기는 땅벌 같은 종자들을 대하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이라는 탄식밖에 나오는 게 없었다. 없이 살아도 늘 푸짐하고, 배가 고픈 대로 따뜻하고, 별달리 도와주는 것이 없어도 믿음직스럽던 고향의 인심은 그리움 저편의 머나먼 이야기였다. 서울 사람이라고 별난 종자만 뽑아다 둔 것도 아니고, 여섯 해가 넘도록 갈지자로 서울길을 헤매다 보니까 조선 팔도 오만 잡동사니는 다 모여사는데, 그 인심이 어찌 그리 야박하고 인정사정이 없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서울 냄새」 중에서
“농새일언 배와서 멀 헌다요?”
“농새짓제 멀 해야, 멀 허길.”
“백날 농새지먼 무신 소양이 있다요. 평상 요 모양 요 꼬라지 못 면허고, 도시놈덜 종 노릇만 쌔빠지게 허다 만단 말이요.”
“그라먼 농꾼이 농새짓제 무신 일얼 헌다는 것이여?”
“그럴라먼 중학교는 멋헐라고 보냈습디여?”
“아, 사람이 삼스롱 무식은 면해얄 것 아니여.”
“아부지넌 무신 말씀이다요. 무식 면헐랐음사 소학교만 나와도 그만이랑께요. 중학교 나와서 농새질 참이었음사 소학교 끝내고 농새짓는 것이 훨썩 이문이었당께요. 중학교 댕김서 애뿐 고 아까운 돈으로 논을 샀어도 두 마지기는 샀을 것 아니다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아들은 늦가을 알밤처럼 철이 들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라먼 워쩌겄다는 것이다냐?”
“밑천을 뽑아야지라우. 디린 밑천을 곱쟁이로 다 뽑아야지라우.”
“그려, 말이야 청산유수로 이도령이 춘향이 맘 후리디끼 꼬시고 단디, 무신 수로 디린 밑천을 곱쟁이로 뽑겄다는 것이냐. 워디 속 씨언허니 말얼 혀봐라.”
“야아, 얼렁 농새일 때래엎고 도시로 나가야제라.”
“도시로 나가서는?”
“그야 달라진 시상에 맞춰 기술을 배와야제라.”
“이눔아, 시상이 어찌크름 변혀도 사람이 하로 세 끄니 안 묵고는 못 사는 법이여. 그 사람 입에 묵는 것 들어가는 것 맹그는 것이 바로 농사짓는 것이고, 농사 잘 짓는 것도 아조 큰 기술인 것이란 말이여. 긍께로 천년만년 가도 변허는 일은 땅얼 딱 믿고 농사일 착실히 잘허는 것이 질로 안전헌 직업이란께로.”
“아이고메 아부지, 워찌 그리 시상 돌아가는 것 몰르고 앞 캄캄헌 심 봉사요, 그래. 인자 농사고 농촌이고 농민이고 다 엎어지고 깨져 끝장나부렀당께라.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똑허니 채리고 변해가는 시상을 보랑께라.”---「다시 못 갈 고향」 중에서
복천은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시장을 뒤로했다. 어제 집 짓는 곳에서 등짐 하던 사내로부터 느꼈던 무서움에는 댈 수도 없는 무서움이었다. 허전했던 기분, 그런 것은 호강스러운 생각이었다. 한 발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은 캄캄한 밤이었다.
다리를 절룩이며 서투른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복천의 눈앞에는 마누라의 얼굴이, 소식 없는 큰아들의 모습이 겹쳐서 어른거리다가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곤 했다. 지옥이 따로 없을 이런 세상에서 아들놈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알 것인가. 주먹이나 약하고 성질이나 고분고분했으면 또 모른다. 큰아들을 생각할수록 조바심이 일어나고 불길한 생각을 떼칠 수가 없었다.---「삶의 거센 파도」 중에서
서울 부자들은 박 진사는 명함도 못 내놓게 담 치장이 요란스러웠던 것이다. 두 길이 넘는 높은 담도 부족해서 쇠막대기를 꽂지 않았던가. 한데 그 쇠막대기 끝은 누구 배창자를 끌어내려고 그리도 뾰쪽뾰쪽하게 쇠창살을 또 붙인 것일까. 그러나 어디 그것뿐인가. 어떤 담에는 그 뾰쪽한 쇠막대기 끝이 하나 간격으로 밖으로 내뻗치고 있었다. 호랑이 발톱이라고나 할까, 늑대 이빨이라고나 할까. 더 기고만장한 것은 그런 위에다가 가시 철망까지 또 서리서리 둘러놓은 것이었다. 죄를 졌어도 지옥 기름 가마솥에 처박히거나, 이글거리는 숯불밭을 혀에 구멍이 뚫려 끌려야 하는 죄를 짓지 않고서 어찌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할 수 있으며, 무슨 겁이 그다지도 많이 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부잣집들은 서울 인심이 어떤지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었고, 그건 바로 복천 영감이 진저리치는 서울 냄새였다.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할아버지, 칼 많이 갈으셨어요?”
“그랴, 니도 복권 많이 폴았냐?”
“예, 그런데 할아버지…….”
“무신 일이냐.”
“이젠 맞춰보기가 겁이 나요.”
“허어, 무신 소리라고. 워디 니가 허는 일이간디?”
“그래도 발표 때마다 허탕이니까 할아버지한테 너무 미안해요.”
“원 별소리 다 헌다.”
복천 영감은 인숙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참한 얼굴이었다. 다음에 영수놈 색시감으로……, 복천 영감은 자기의 엉뚱한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꼭 인숙이에게 들킨 것만 같아 복천 영감은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열 본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는 법잉께. 인숙아, 얼렁 불러라.”
(……)
복천 영감은 오늘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다른 날보다 배 가까운 수입을 올렸던 것이다.
복천 영감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상쾌해서 또 돈을 전부 꺼내들고 손가락에 퉤퉤 침을 뱉었다. 다시 세어보며 그 느긋한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어!”
복천 영감은 소리쳤다.
손에는 돈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은 차도로 막 뛰어내리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도 내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