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 편지를 북에 있는 누군가가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면서도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뜻에 동참하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자 한 자 쓰면 쓸수록 꼭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답장을 해주었으면, 그래서 또 내가 답장을 보내고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마침내 남과 북이 온전히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 생전에 맞이하기를, 남쪽이 모자라는 부분은 북에서 배우고, 북쪽에서 힘든 일은 남쪽에서 배우면서 지금보다 행복하고 더 나은 세상 함께 만들어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 간절해집니다.
--- p.27
‘뭐라 편지를 쓰지? 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한 동포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 글과 말로써 소통을 시작한다는 것, 얼굴은 모르지만 상상일지라도 관계를 만들고, 상대를 배려하며 말을 고르고 정성을 들이는 모습, 거기서 우리의 작은 시도지만 소중한 평화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 p.28
제가 사는 강원도 양양은 삼팔선 이북입니다. 전쟁 뒤에 휴전선이 다시 그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바대로 ‘수복 지구’라는 이남 땅이 되었어요. 오랜 세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았던 거짓 교육, 증오 교육과 마찬가지로, 이곳 어른들은 아주 오랫동안 남과 북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평화’니 ‘이웃’이니 이런 말에는 아예 고개 돌리고 살았습니다. 새로운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어떤 아픔을 건드리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전쟁 때 이곳 젊은이들 대부분은 북쪽 군인이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 형제들, 외할아버지 형제들 역시 북쪽 군인이었고, 전쟁 때 사망했거나 북으로 갔습니다. 외할아버지 동생은 혼인한 지 1년 만에 전쟁에 나갔다가 북으로 갔고, 남편이 북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각시도 아기를 등에 업고 눈 내리는 설악산을 넘어 북으로 갔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이산가족 아닌 집이 없습니다. 우리집도 마찬가지로, 저의 어머니쪽 아버지쪽 친척은 모두 이산가족입니다. 그리운 마음을 숨기고, 거짓 마음을 밖으로 내세우며 살아온 지 70년이 흘렀어요.
--- p.32
어릴 적 ‘펜팔(Pen Pal)’이라고, 이름도 모르는 다른 땅에 사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꾸준히 보내서 친구를 사귀려는 언니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나 잘 사귀지, 무엇하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써서 보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편지를 쓸 때 아주 진지했고, 기다리고 기다려 답장이 왔을 때, 그 때의 언니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에이, 물론 저는 끝내 안 썼죠!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분이 원산에 사는 분들께 〈북녘동포에게 편지쓰기〉란 운동을 펼쳐 남북을 서로 이으려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저에게 편지 한 통 쓰라고 권하셨지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가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할 건데, ‘모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는 써서 뭐하나, 편지가 힘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권유하신 선생님의 말씀대로 편지 10통, 100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1000통, 10000통의 편지가 원산으로 보내진다면 세상은 점점 따뜻해지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스쳤습니다.
--- p.180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이 있던 날, 그날 저는 제주도의 걷기길인 ‘올레길’을 걷다가 그 감격적인 소식을 들었고, 북과 남은 이제 잡은 손은 결코 놓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가까운 언젠가 제 다리가 떨리더라도 제 가슴이 떨리는 어느날엔 가벼운 배낭을 메고,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걸어서 말로만 듣던 원산의 명사십리 넓은 모래밭에 이르겠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마무리하는 데는 대동강 맥주 딱 한 잔이면 됩니다.
--- p.202
“남쪽 동네 한 사내와 북쪽 동네 한 사내가 만나 두 동네 사이 5센티로 솟은 담을 잠깐 넘어갔다 왔다 한 게 역사적 사건이라며 온 지구가 왁자하니 시끄러웠던 그런 봄날이 있었다. 우습지 않나. 비무장지대 종달새는 태곳적부터 우스웠다. 왜 저러고들 살까. 넘어갔다 넘어왔다 그런 놀이라면 어릴 적 우리 동네 아홉 살 순이가 젤로 잘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노래만 불러주면 높디높은 깜장 고무줄 잘도 넘어갔다 넘어왔다 했다. 해만 뜨면 그랬다. 해 질 무렵이면 순이야 밥 묵어라 오매는 순이를 부르는 것인데, 또 다른 순이 둘이 양쪽에서 꼭 쥐고 있던 고무줄 탁 놓으니 여기엔 이쪽도 저쪽도 없고, 그러니 왔다 갔다 할 일도 없고, 남도 북도, 무장지대도 비무장지대도 없어서 평화라는 한 물건조차 사라진 참 이상한 세상, 지금 여기서도 환하고 환하구나.”
--- p.192, 「고무줄놀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