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옥수수밭에서 배운 글짓기』는 옥수수알맹이처럼 세상에 수두룩하게 많은 글쓰기 책 중 하나이고, 누군가에게는 영 맹숭맹숭한 맛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또 모르죠. 이런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어떤 호기심으로 이 글짓기 안내서를 만나게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당신도 이제 제대로 글 농사를 지어볼 때가 되었다는 것. 봄부터 여름까지, 옥수수가 치열하게 성장하는 동안 부디 맹렬하게 써보세요. 삽질이든 호미질이든 뭐든 시작하셨다면 당신의 석 달 후는 분명 다를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힘들수록 열매는 달고 순할 거라는 것도 미리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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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다는 행동은, 주어진 것을 가지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계획 세우고 노력을 하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은 농사와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씨앗을 고르고, 심어 기르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밤낮으로 돌봅니다. 콩 심은 데 팥이 나기도 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잡초에 묻혀 죽습니다. 열매를 맺었어도 제때 거두지 못하거나 갈무리하지 못하면 썩어서 내버리기 일쑤죠. 무엇보다 글이나 농사는,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용기입니다. 외롭고 힘드니까요. 누가 박수 쳐 주는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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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삶을 유지해주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방법으로써, 글은 아주 탁월한 매체예요! 다시 농사로 돌아가지요. 농사 계획의 1번은 농사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생계로써 농사를 짓는다면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농부회에 지원하신 게 아닌 것처럼요. 그러니 패스. 우리의 농사는 반찬값을 아끼기 위해, 가족에게 신선한 채소를 먹이고 싶어서, 텃밭의 즐거움, 자연인 흉내 등으로 시작되었을 겁니다. 뭐든 목적을 적어봐요. 목표가 있어야 농사가 힘들 때, 농사를 망쳤을 때 재빨리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요. 최악의 경우는 밭이 있어서, 입니다. 이 경우, 계속해서 잡초와의 싸움이 예상됩니다만…. 잡초랑은 싸우려고 하면 안 돼요. 무조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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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퇴고하다가 문득, 찰흙 작품을 다듬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혼자서 퇴고를 ‘글의 몸매 다듬기’라고 불렀는데요. 불필요한 것들을 삭제하고, 미처 못 보았던 것을 부각하기 위해 살짝 무언가를 얹고, 몇 번이고 읽으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만드는 동안 ‘초고’라는 글의 몸매를 다듬는다 생각하니 예전보다 퇴고 작업이 덜 힘들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몸매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밋밋한 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죠. 연애 지상주의자인 후배는 가슴이 두꺼운 남자가 좋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또 뼈가 섬세한 사람이 좋다고 하더군요. 거참. 저는 특별히 선호하는 몸이 없어서 주로 개성을 보는 편인 것 같아요. 깡마른 사람, 푸짐한 사람, 근육이 발달한 사람, 쪼글쪼글한 사람… 각자 자기가 가진 모습과 성격이 잘 결합한 상태의 개성.
글도 장르보다는 소재에 끌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나, 어떤 글이든 전체적인 볼륨감이 좋을 때 만족합니다. 첫 문장부터 못 박듯 치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밀고 가는 진행도, 찻물 내리듯 조심스럽게 내밀어 천천히 따라주는 방식도 좋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고 마무리되는지, 그 과정에서 그 사람만의 개성을 감출 수 없는 글이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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