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인도 바라나시(Varanasi)였다. 대학을 일 년 반 다닌 후, 휴학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고, 비행기표를 샀다. 그러고 나니 10만 원가량이 남아있었다. 열흘 동안 하루에 만 원씩 쓰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바라나시 갠지스강 사진을 본지 정확히 일주일 뒤 떠났다. (...)
그 당시에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마피아 조직에 의해 운영된다고 믿었다. 건너편 모나리자 식당에서 들은 건지, 차이 티를 자주 마시던 가게에서 들은 건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니면, 워낙 인도 여행에선 아무도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에 그들을 마피아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마피아 조직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늘 숙소에서 발소리와 숨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고 걸으려 노력했다. 또한 열흘을 머물며 청소 한 번 요구하지 않았다. 일을 시킨다고 해코지를 하거나 숙박 요금을 말도 없이 더 내라고 할까 봐 무서웠다. 그때 내가 최고로 소중히 지니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선불로 지불한 숙박요금 영수증이었다.
쨍한 밖의 햇살은 한 가닥도 들어오지 않는 방, 흐릿한 전등 아래에서 작은 수첩에 그 날 만난 사람들, 먹은 것들, 길에서 배운 쉬운 인사말 몇 가지를 적곤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온갖 감정들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 적어보려 애썼다. 일기를 다 쓰고 난 후에는 삐그덕 거리는 침대 위에 누워 낡은 담요를 덮고는 하루 내 들이마신 온갖 새로운 것들을 밤새 소화시키느라 바빴다.
---「바라나시의 낡은 담요가 꾸던 꿈」중에서
사하라에서는 모든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모래에서 모래로, 혹은 바람에 실려 온 채로, 뜨거운 낮 동안 숨겨온 소리가 한 가닥씩 피어올랐다. 지글지글 뜨거운 태양이 모래를 데우던 소리가, 저기 흥겨운 텐트에서 연주되는 베르베르 전통 악기의 멜로디가, 밥 말리의 발바닥이 콩콩 사막에 닿을 때 만들어지던 박자가, 조금 먼 곳에서 흘러 들어와 길을 잃은 이야기가 모래 능선을 따라 곱게도 퍼져 있었다.
그렇게 사막의 소리를 듣다 보니, 모래로 덮었던 발이 다시 차가워졌다. 나는 다시 다른 구덩이를 파서 발을 파묻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잘 곳이 눈에 들어왔다. 추위를 이길 수 없을 때까지 사막을 즐기다 이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두 다리 뻗고 잘 곳이 있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포근한 이불을 덮은 것 같았다. 나는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여러 번 모래 구덩이를 팠다.
---「모래 능선을 따라」중에서
기대에 차서 들어갔다가, 방이 없다는 말에 터덜 터덜 나오기를 몇 차례,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막 문을 연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메콩강 바로 옆에 자리한 식당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강바람이 살살 불어와 땀이 맺힌 이마를 식혀주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도 조금은 열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맥주를 주문했다. 오늘 당장 잘 곳을 못 구하더라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맥주를 받자마자 꿀꺽꿀꺽 들이켰다. 목 넘김이 좋았다. 역시 태국 맥주는 태국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라고 홀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마셨다. 바로 어제도 마셨으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났더니」중에서
나는 로밍도 하지 않고, 현지 유심칩도 사지 않았기에 인터넷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잘 데 있어.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나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은 내 의견은 묻지 않고 어느 숙소에 바이크를 세웠다.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대.”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스터키를 가지고 정말 남은 방이 한 개인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상황이었지만 당시 내가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주인이 보여준 방을 보니 침대가 달랑 하나였다. 더블침대. 나는 그녀에게 마찬가지로 손가락 두 개를 브이자 형태로 보여주며 “투 베드, 투 베드 플리즈”를 또다시 거듭 외쳤다. 그녀는 나를 향해 난처한 표정, 그리고 삼촌을 향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번갈아지어 보였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지금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이건 호의도 아니고 배려는 더더욱 아니고, 그래 함정이라면 함정일 이 상황은 무엇인가. 머릿속이 참으로 복잡해졌다. 시계를 보니 날이 밝기까지 4시간쯤 남아있었다. 나는 옷을 벗고 샤워하는 것조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간단히 세수와 양치만 했다. 하지만 그는 뜨거운 물로 오래 샤워를 했다. 그때 삼촌이 내뱉던 소리들이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으어, 으어… 하는, 뜨거운 물에 차가운 몸을 녹이며 내던 이상하고 끔찍하고 징그러운 소리. 화장실에서 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오만상을 썼다.
그가 씻는 동안 혼자 떠날까도 싶었지만, 어두운 밤을 맞이한 외딴곳에서는 그것도 적절한 대처가 아니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지만, 기내 수하물로 하나 달랑 메고 온 작은 배낭 안에는 위험해질 수 있는 물품 자체가 없었다.
---「호의인가, 함정인가」중에서
방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은 늘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다. 사진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무엇이 얼마나 다를지 염려가 되는 것이다. 늘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하지만, 그럼에도 줄이고 줄인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방의 민낯과 마주했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클라의 숙소는 정말이지, 기대 그 이하였다. 방은 상당히 어두웠다. 첫 번째 층인 데다가 창문이 작아서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리셉션 바로 옆 방이었고, 건물의 계단은 내 방 옆에서 시작하여 내 방 위를 지나가는 구조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내 방안으로 고스란히 울려 퍼졌다.
거슬리는 소리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그 안에 숨겨진 폭탄이라도 있는 것처럼 불안한 소리였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소음이어서 나는 결국 숙소 직원을 부르게 되었다. 직원도 소리를 듣고는 놀라서 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은 별 다른 장비 없이 그저 세면대 물을 틀었다 잠갔다만 반복하더니, “문제없어요.”라고만 했다. 물을 틀 때마다 무서울 지경인데 문제가 없다니. 정말이지 화가 하나 둘 쌓여갔다. 와이파이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겨우 연결이 되어 뭐라도 좀 찾아볼까 싶으면 바로 와이파이가 꺼졌다. 이래저래 답답한 지경이었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 바퀴벌레를 만나기도 했다. 배수구 구멍에서 올라온 것이다. 씻어도 개운하지 않고, 오히려 찝찝함만 남기는 샤워였다.
---「컴플레인하길 참 잘했지」중에서
시작부터 엄청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밤에 그저 앞에 난 발자국들을 쫓아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충분히 많이 걸었다고 생각하여 위를 올려다보면, 앞서간 이들의 헤드랜턴 빛만이 촘촘히 펼쳐져 있었다. 그 끝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좌절했다. 참으로 더디고 무거운 시간이었다. 걷고 걷다 지쳐 그저 길바닥에 눕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못 걷겠다.’라는 말조차 내뱉기 힘겨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10초 이상을 견디지 못했다. 눈밭 위에 눕자 살인적인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불에 데이듯 허겁지겁 바닥의 눈을 피해 일어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걷는 것밖에 없었다. 니콜라스는 계속해서 “폴레 폴레(Pole Pole)”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 뜻은 ‘천천히, 천천히’이다. 탄자니아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사방은 여전히 어둡고, 나는 멈출 수도 달릴 수도 그렇다고 누워 버릴 수도 없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길 위에서 니콜라스의 “폴레 폴레”를 마법사의 주문처럼 들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것, 을 해낸 이가 있기는 한 걸까?
---「세 개의 봉우리, 가장 높은 곳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