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백일장에서 내가 남의 글 일부를 훔쳐와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적이 없는 척, 어린 시절의 일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여겨온 뻔뻔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변명으로 일관된 자위를 거듭하는 동안 나는 서서히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선홍의 꽃들은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 p.25
“꿈을 꾸면 그 글의 원작자가 찾아와 내게 해명을 요구했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온갖 이유를 다 끌어와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어.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어. 어느 날은 학교까지 찾아왔어. 전체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나를 가리키더니 자기 글을 훔친 도둑이라고 몰아붙였어. 운동장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손가락질로 나를 가리키며 야유를 보냈어.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었어. 결국엔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려워졌으니까. 꿈에서 깨어나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 길을 걷다가 누가 등이라도 툭 치면 깜짝 놀라곤 했으니까.” --- p.29
“자, 삼십 분 남았으니 이제 슬슬 정리해라.”
삼십 분? 선생님, 잡념 속에서 부리나케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아직 제목밖에 써놓지 않았으니까요. 바로 그때, 언젠가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이 선명하게 떠올랐지요.
눈보라 치는 시골 정류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얼굴이 눈처럼 흰 소녀. 그리고 저만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마을의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노인의 장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당연히 나의 이야기라고 믿어버리고 말았지요. 이윽고 소녀는 버스를 타고 떠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진 한 장. 소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들어 있는. 그 사진을 간직하는 나.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 분명 지난겨울 내가 겪은 이야기라고 확신하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펜을 잡은 오른손은 그동안 제목만 써놓은 채 비어 있던 원고지 위를 택시처럼 질주했습니다. 두어 번 정도 잠시 숨 돌리는 시간만 제외하고서. 심지어 글을 모두 쓴 뒤에는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을 도둑질했다는 기억조차도 깡그리 잊어버렸다면 믿으시겠는지요. 다시 읽어보아도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글을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저는 유유히 강당을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헤실헤실 웃으며.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거라고 자부하며 교정의 시멘트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지요. --- p.98
선생님, 아무리 주변의 죄와 벌을 떠올리고 헤아려봐도 반성문 500매보다 가혹한 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저도 매를 맞거나 정학을 당하는 게 속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요. 하루에 열 장씩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써도 50일이나 걸리는 반성문. 50일 동안 남의 글을 훔친 사실을 떠올려야 된다는 것.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선 안 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 500매를 채우려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 전체를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지 오기 때문에 저는 한숨 박사가 되었지요. 반성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에 한숨 외에는 달리 대답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한숨을 쉬며 수학 문제를 풀고 다른 학생들이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 한숨을 쉬며 박수를 쳤지요. 선생님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고 돌아서면서 한숨을 쉬었지요. 운동장에서 굴러가는 공을 쫓아 달려가다가 돌연 멈춰서 휴우 숨을 토했답니다. 이십 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교문 앞에서 한숨을 쉬고 들어섰지요. 수업이 모두 끝나고 먼지 날리는 교실을 빗자루로 쓸다가, 수건을 들고 이층 창틀에 매달려 입김을 호호 불다가 바람이 빠지는 자루처럼 주저앉곤 했답니다. --- pp.124-125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국어 선생님 결정이 옳은 것 같아. 시험 때 커닝하는 것과 글을 커닝하는 건 나도 다르다고 생각해. 글은…… 예술이잖아.”
예술? 저는 그 애의 입에서 나온 ‘예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함박눈은 다시 침묵을 요구했지요. 정류장 밖의 미루나무는 점점 지워지고 있으니 그 뒤편의 논과 밭, 집, 개울, 산 들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예술이 커닝이어서는 안 된다! 알 듯 모를 듯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예술이란 낱말 하나가 세상을 덮는 눈발 속에서 오롯이 떠오르는 토요일 오후의 정류장이었지요. --- pp.158-159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저의 글이 어딘가에서 무엇인가에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선생님 말씀처럼 그 모든 것이 전적으로 그동안 쓰지 않고 버틴 반성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필시 가장 핵심적인 곳에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할 것입니다. 백일장에서 다른 이의 글을 훔쳐온 사실과 부닥뜨리지 않으려고 그동안 피해 돌아다닌 게 사실이니까요. 그뿐입니까. 살아오면서, 글을 쓰면서, 어떤 벽과 마주칠 때마다 그 벽을 뚫고 나갈 각오를 하는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다리를 찾는 게 버릇이 되었지요. 스스로 애써서 한 낱말, 한 문장, 한 이야기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차선책에 눈독을 들이다가 결국 손을 잡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지금 여기까지 간신히, 겨우, 구사일생 도착한 겁니다. 운이 좋아도 엄청 좋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저와 함께 동행을 하겠습니까. 언제 마음을 바꿔 먹고 떠나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것 때문에 늘 불안해하면서도 저의 게으름은, 나약한 마음은, 그 벽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걸 피해왔던 겁니다. 그때, 중환자실의 침상에서 참다못한 선생님께서 결국 저를 부르신 거지요. 마지막 회초리를 든 채.
--- pp.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