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토라 고분 천문도에 대해 ‘뭐, 고구려 거 가져다가 새겨 놓은 게 별건가?’ 하고 생각한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네. 과학 문화재를 볼 때에는 열린 자세가 필요해. 남을 존중하는 만큼 내가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한 뜻이야. 문화재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며, 국적을 떠나 옛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치열한 열망을 읽어낸다면 대단한 소득이지. 그런 다음에 구체적인 사실을 이해하고 토론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 p.33
“자, 다음 이야기로 떠나기 전에 잠깐!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 두렴. ‘정확성’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옛 지도들이 시시할 수도 있지만, 역사 속에서 지도들의 특성을 찾아보면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조선에는 놀라운 지도 제작의 전통이 있었다는 걸 잊지마. 오랜 시간 이어진 지도의 역사가 없었다면 「대동여지도」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지도 역시 위대한 전통 속에서 위대한 창조가 이루어진 거지.”
--- p.221
“우리나라 과학 수준은 오랜 기간 중국에 근접해 있었어. 때로는 중국을 살짝 올라서기도 했지. 세종 시대가 그랬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과학기술이 세계 최정상에 있었어. 일본에서 세계 과학사 업적을 연표로 만들었는데, 이 시기 과학 업적의 대다수가 조선의 과학 유물로 채워졌어. ‘소간의,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칠정산」내·외편, 천상열차분야지도, 측우기, 팔도지리지, 「향약집성방」, 「농사직설」, 금속활자, 화약과 화포…….’ 아, 이름만 늘어놓는 것도 숨이 찰 정도야. 근데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대단한 것을 고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칠정산」을 말하겠어. 단숨에 중국 문턱을 넘어섰으니까. 또, 당시 세계 역법의 최고봉이니까 말이야.”
--- pp.135~136
“금이 어디서 나는지 어떻게 찾는지 알려주는 책이 있어. 이규경이 쓴 「오주서종박물고변」. 금 찾는 법이 나온다니, 이 책은 ‘보물지도’라 할 만하구나. 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광물질과 그것으로 만드는 기술까지 다 들어 있어. 뭐니 뭐니 해도 금이 어떤 곳에 있는지 가장 궁금하지? …… 「오주서종박물고변」은 중요한 책인데 아직 연구가 거의 없어. 아직 연구가 없는 상태지만, 이 책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책에 실었어.”
--- pp.236~237, --- p.248
“왜 과학을 다루는 이 책에서 엉뚱하게 음악 이야기를 꺼내냐고? …… 음악을 바로잡는 과정은 도량형의 표준을 정하는 첫발이기도 했어. 요거 아주 중요해. 황종 음의 기준으로 삼았던 기장 알곡이 모든 도량형의 표준이 됐기 때문이지. ……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음악의 단위와 도량형의 단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음을 바로잡는다고 했던 것은 도량형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과 똑같은 말인 셈이야.”
--- pp.155, 161, 163
“「대동여지도」를 들고 먼 길을 떠나 볼까? 과연 옛 지도를 들고 오늘날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니? 서울에서 시작해서 현재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가 보자. …… 목적지를 알았으니 이제 출발해 보자. 한강 여의도 위쪽 길을 따라 죽 가면 성현이 나오고, 한참 가면 제물포가 나오고, 월미도를 지나서 영종도로 가는 거야. …… 어때, 산, 강, 땅, 바다, 군현의 경계 등 여러 가지 정보가 잘 표시되어 있지? 「대동여지도」를 들고도 오늘날 웬만한 큰 길은 찾을 수 있어.”
--- pp.204, 206,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