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본인이 알든 모르든, 누구나 원하는 것을 원치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원했던 것은 하나님이다. 나는 손에 만져지는 교류를 원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 이상으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로봇이나 곤충, 우주에 떠다니는 희한한 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하나님과 접촉만 된다면 그분이 내가 누구이며 왜 그런 존재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예수님께 참으로 헌신하기 전의 몇 날 몇 주는 비참하고 외로울 수 있다. 나는 인간 경험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인간이 되겠다고 자처한 적이 없다. 아무도 모태에 와서 내게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았고, 세상에 나가 살고 호흡하고 먹고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일에 내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정말 해괴한 일이라는 생각, 우리가 꼼짝없이 살갗에 갇히고 중력으로 지구에 매인 채 어쩔 수 없이 이성(異性)에 끌리고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미쳐 가고 있었나 보다. 나는 수중에서 호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억울해하며 꼬박 일주일을 보냈다. 나는 하나님께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잠에 대해서도 약간 억울했다. 우리는 왜 자야 하나? 원하는 만큼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나를 수면이 필요한 이 몸 안에 두셨다. 삶은 더 이상 자유의 경험 같지 않았다.
--- p.117-118, 「9. 변화 _옛 신앙의 새 출발」 중에서
뭔가 아름답고 진실한 것이 탁자를 쿵 내리친 게 분명했으므로 우리는 다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다 그것이 훌륭한 아이디어라 생각했고 서로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사죄한다면, 십자군에 대해 그리고 콜럼버스와 및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하마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에 대해 사죄한다면, 멕시코에 상륙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디언을 살육하며 미국 서부로 올라온 선교사들에 대해 사죄한다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일들이 예수와 전혀 무관하다고 어서 말해 주고 싶었고, 내가 여러 모로 주님을 잘못 대변해 온 것을 어서 사과하고 싶었다. 내가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하려 하지 않고 판단하고 인권 문제를 말로만 떠든 것은, 곧 주님을 배반한 것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기독교라는 종교 체제 전체에 욕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때까지 늘 기독교를 옹호했었지만, 우리는 종교 체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행동, 바른 행동은 그동안 우리가 예수의 길을 막았던 것을 사죄하는 일이었다.
--- p.141-142, 「11. 고백 _옷장에서 나오다」 중에서
전에 다니던 교회들의 경우 나는 개밥의 도토리 같았다. 마치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처럼 늘 입양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것 있잖은가? 나는 받아들여지긴 했으나 이해받지 못했다. 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있었지 나는 가족의 일원은 아니었다.
교회를 비난해서 이로울 게 없으니 교회 전반을 도매금으로 나쁘게 말하지는 않겠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몇 군데밖에 되지 않지만 각 교회마다 나는 똑같은 긴장을 맛보았다. 이 주제를 꺼낸 이유는 그뿐이다.
나는 전에 다녔던 교회들의 이런 점들이 싫었다. 첫째, 사람들이 내게 예수를 팔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세일즈맨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팔려는 제품의 유익을 낱낱이 열거해야 한다고 배웠다. 일부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는 내 느낌이 딱 그랬다. 그들은 언제나 기독교 신앙의 유익을 열거했다. 그게 내 심기를 건드렸다. 유익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유익은 있지만 그렇다고 꼭 영성을 진공청소기처럼 말해야 하나? 나는 예수님을 제품으로 느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분이 인격이기를 원했다.
--- p.155, 「12. 교회 _화나지 않고 다니는 법」 중에서
다이앤은 수심에 찬 내 얼굴을 보고는 웃으며 친절히 대답했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에요, 돈.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당신은 그녀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고 있어요.”
“판단에 맡기다니요?”
“자신의 가치 결정권을 그녀에게 내주고 있다는 뜻이지요. 당신의 가치는 하나님한테서 와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나는 그게 옳은 말임을 알았다. 옳은 말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잘못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교만한 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내 모든 자학과 자기혐오가 하나님한테서 온 것이 아니며, 그런 목소리는 하나님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시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왠지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야만 할 것 같았고 그 내용을 사실로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세요, 돈.” 나를 보는 다이앤의 눈이 약간 젖어 있었다. 나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신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자 맷 데이먼이 격정을 가누지 못해 로빈 윌리엄스를 와락 끌어안던, 그리하여 둘 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 주던 그 장면의 맷 데이먼이 된 심정이었다. 나는 다이앤에게 그 장면을 재연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옳지 않은 것 같아 그만두었다.
--- p.266-267, 「19. 사랑 _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