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 서적이 많지만 ‘북한’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을 고르기가 참 어렵다. 더욱이 북한 주민들의 삶이 있는 그대로 녹아 있는 책은 별로 없다. 북한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통일로 가는 길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으며, 통일 상대방인 북한 의도를 오인한 채 남한 중심적 인식 속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북한에 사는 일반 주민들의 삶이 어떤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 인권 실상이 열악해서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정책을 내세워도 공감하는 정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 생활, 친구 생활, 가족 생활, 동네 주민 생활이 담긴 『은경이 일기』를 통해 “북한이 이런 곳이구나”, “우리와는 이렇게 다르게 사는구나”를 알게 되면 좋겠다. 현재의 북한 사회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통치자 중심의 북한 뉴스에서 벗어나 북한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서문」중에서
엄마: 저..저...떡 빚는 꼬락서니를 좀 봐라! 언 손질 하지 말고 야무지게 좀 해라. 송편을 곱게 만들어야 이담에 시집가서 고운 애를 낳는단다!
나: 그러는 엄마는... 떡을 못 생기게 빚어서 내 이렇게 못 생겼구나..
엄마: 말 말아. 니 애기 때는 얼마나 고왔는지 아니? 너를 보는 사람마다 나중에 호텔 앞에다 가만히 세워놓기만 해두 잘 될끼라구 그랬다. 그러던 게 저게 왜 저렇게 컸는지... 내 잘못 낳은 게 아이라 니 잘못 커서 그렇다.
나: 어련하겠소...
--- p.15
엄마: 일어나라. 오늘 선선데, 학교 안가니?
나: 응 간다. 근데 퇴비를 일인당 한 마대씩 가지구오라는데 어쩌니?
엄마: 퇴비 없다 그래. 먹어야 똥 싸지? 먹을 것두 안 주는데 똥이 어디 있다니? 먹을 거나 주구 똥이든, 밥이든 달라 하라 그래.
나: 엄마 좀... 그러지 말구 어떻게 좀 얻을 데 없을까?
엄마: 삼촌네 집에 가봐라. 가서 변소에 있는 것 좀 달라구 그래.
--- p.18
오늘은 학교 가는 날, 아니 지옥 가는 날이다. 토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은 것 때문에 또 담임한테 어떤 욕을 들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렇다고 계속 안가면 그만큼 욕을 더 먹어야 하니 차라리 욕을 좀 먹더라도 욕의 연결고리를 끊어야겠다 싶어 일찍 일어났다. 세수하고, 양치하고, 밥 먹고 나니 벌써 8시다. 나는 서둘러 진옥이네로 향했다.
--- p.25
여름에도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가끔 수도가 끊기곤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전기문제가 아니더라도 워낙 날씨가 추워 상수도와 하수도가 모두 얼어붙을 때가 많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일찍 얼어붙는데 이번 겨울에는 날씨가 조금 따뜻했던 덕분에 여태 버틸 수 있었다. 또 다른 집들보다 부엌이 넓은 덕분에 800 물탱크를 가지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보통 장마철이나 겨울에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물이 나오는 날이면 물을 담을 수 있는 통들은 전부 동원해 물을 받아 둔다.
--- p.77
혁명역사 선생님: 야 날라리! 니 한번만 더 보믄 쫓게 난다?
나: 예? 내 암 것두 아이 했는데?
혁명역사 선생님: 내 다 보구 말하는긴데 니 썩어지게?
나: 샘. 사람이 죽기 전에 절대로 먼저 아이 썩습니다. 크크크
--- p.92
날씨가 따뜻해지니 치마를 입으라고 난리다. 오늘부터는 학교 정문에 규찰대를 세워 옷차림 단속을 시작한단다. 여학생들은 치마, 남학생들은 교복에 운동화, 소년단원들은 소년단 넥타이를 매고, 청년동맹원들은 청년동맹 뱃지를 달아야 한단다. 만일 치마를 입지 않았거나 소년단원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청년동맹원 행세를 하게 되면 하루 수업에 들여보내지 않고 청소를 시키겠단다.
--- p.111
담임선생님: 오늘은 생활총화 아이 한다.
학생들: 아싸 ~~~ 신난다.
담임선생님: 아싸는 무슨, 오늘 오후에 책상 의자랑 칠판에 에나멜 칠을 할 테니까 1시까지 여자들은 에나멜 칠을 할 수 있는 솔 가져오구, 남자들은 못이랑 펜치, 망치 가지고 오나. 남자들은 고장난 책상, 의자 수리하구 여자들은 에나멜 칠 하믄 된다. 알았니?
학생들: 예 ~~~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