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도 도자기예요?”
“물론이야. 토기는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지. 이집트에서는 7천 년 전에 사용하던 토기도 발견되었단다. 그 오리 토기는 신라 때 만들어졌으니까 1,500년쯤 되었지.”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1,500년 전 유물이라니 말이다. 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는 토기를 그릇으로 사용했어. 옛날 고분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파 보면 토기로 만든 그릇과 접시, 술병, 술잔과 등잔 등이 많이 나온단다.”
“그러면 토기 다음에 나온 도자기는 뭐예요?”
예림이였다.
“통일 신라 말기에 청자가 만들어졌지. 약 1,200년 전이야. 그것이 고려 때 더욱 발달해서 청자하면 고려청자를 말하곤 해.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청자의 뒤를 이어 백자가 만들어졌어.”
결국 도자기는 토기 - 청자 - 백자의 순서대로 발달해 왔다는 말씀이었다.
“그럼 도자기는 토기와 청자 그리고 백자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는 군요?”
민석이는 수첩에 메모를 하며 물었다.
수공이는 그릇을 국가에서 만든 것이 이상했다. 나라에서 할 일도 많았을 텐데 왜 그릇 만드는 것까지 관리를 했을까? 게다가 도자소라는 곳에 도공들을 가둬 두고 도자기를 강제로 만들게 했다. 설명에는 요직이라고 해서 도자소를 관리하는 공무원도 있었다고 나와 있다.
“자, 이제 그만 적고 모여 보거라.”
선생님께서 지도를 보시면서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여기, 이 지도 잘 봐라. 고려 시대 때 청자를 만들던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전국 각지에 여러 곳이 있었지. 그중 강진에서 거의 절반이 만들어졌다. 고려의 서울은 개경이지. 요즘은 개성이라고 해.”
선생님은 지도의 가운데쯤을 가리키셨다.
“그러니까, 전국에서 청자를 만들어서 개경으로 옮긴 거야.”
수공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드는 건데, 흙은 어디에도 있다. 굳이 먼 곳에서 만들어 힘들게 운반하는 이유가 뭐지?
“왜 그렇게 멀리에서 만들었죠? 그냥 개경에서 만들면 안 됐나요?”
“좋은 질문! 우선 흙 때문이지.”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도자기를 흙으로 만든다고 아무 흙이나 재료가 되는 건 아니야. 도자기를 만드는 흙은 질흙이라고 하는데, 점토나 고령토, 장석, 규석, 납석 등을 혼합해 곱게 빻아 고운 입자만 재료로 쓴단다. 그런데 강진은 그런 재료가 충분했지. 게다가 물과 기후도 좋고, 바다를 통해 운반하기도 알맞았어.”
수공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렇게 해안을 따라 도자기를 운반했는데…….”
선생님은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해안선을 손으로 쭉 따라 올라가며 말씀하셨다.
“바로 여기, 안면도 위 태안 앞바다에서 많은 배가 침몰했어. 그래서 오늘날 이 부근에서 보물선이 자주 발견된단다.”
순간 수공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물선은 만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있다니……. 그런데 대체 무슨 보물이 실렸을까?
“도요토미는 조선을 침략한 뒤 도자기를 가져가는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고 도공들을 납치하기 시작했어.”
수공이는 어이가 없었다. 기술을 배워 가면 되지 사람까지 잡아가다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기지 않았던가. 특히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많은 왜군을 물리쳤다. 그러면 끌려간 도공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나면 포로를 교환한다는 것 같은데 말이다.
“전쟁이 끝난 뒤 왜 그들을 데려오지 않았나요?”
수공이의 질문에 큐레이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협상이 제대로 안 됐지. 더구나 일본과는 바다로 떨어져 있으니까 쉽게 오고갈 수도 없었고. 그래서 일본은 1597년에 다시 쳐들어왔는데, 그걸 정유재란이라고 해.”
수공이는 그때서야 왜 정유재란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일본은 두 차례의 전쟁으로 우리나라에서 크게 세 가지 문화를 가져갔어. 첫째는 금속 활자야. 조선의 금속 활자를 가져가 인쇄술을 발달시켰지. 둘째는 학문이야. 조선에서 가져간 많은 서적으로 일본도 비로소 보다 체계적인 학문을 이룰 수 있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도자기야. 조선의 도자기와 도공들을 납치해서 일본은 이후 도자기 생산 국가로 바뀌게 되었거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니 은근히 화가 났다. 이제 보니 일본은 우리나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말이다.
“아노,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본 문화의 뿌리는 한국에 있는 거로군요. 오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일본인은 계속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이 도자기를 만들어 냈고, 그것이 오쎴날 일본 도자기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지. 그래서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거야.”
큐레이터의 말에 수공이가 되물었다.
“도대체 그때 얼마나 많이 끌려갔죠?”
“도공 수천 명을 포함해 수만 명에서 10만 명까지라고 알려지고 있어. 그중에 돌아온 사람은 3,500여 명뿐이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