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상에는 유교 이념의 비판과 함께 그 결함의 보충 원리로 천인여일의 평등 원리를 제시하는 한편 후천개벽사상에 근거한 반봉건적 성격과 반왜양 · 탈중화의 반외세적 민족주의 정치사상이 포함되었다. 그런 까닭에 동학의 후천개벽사상은 시천주사상의 도덕지상주의적 종교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시형의 사인여천사상의 발전 단계를 거쳐 민중 혁명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 p.82

이돈화는 사회 개조를 위한 근본문제로 공정한 여론을 중요시하여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인간격 완성에 필요한 수심정기의 수련을 요구하는 한편, 사회적으로는 인간격 중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인 삼경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특히 경천 · 경인의 원리로 인도주의 실현을, 경물의 원리로 자연 애호 사상을 역설한 점에서 이돈화는 가히 현대사상의 선구자라 하기에 족하다. --- p.153

천도교의 종교 활동 자체가 민족운동으로 비쳐질 정도로 동학이 현실이상주의적 사회사상으로 변모한 시기는 1920년대다. 당시 천도교는 인내천사상을 진화론적으로 논증하여 천天의 존재를 범신론과 실재론으로 증명하고 신성을 강화하는 한편, 삼대개벽론을 제시하여 후천개벽의 추진 단계를 구체화하였다. 이른바 천도교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다. 서구의 근대사상을 수용하여 통일성 · 세계성 · 실천성을 특징으로 하고, 종교와 철학 · 과학을 포용하는 인본주의 종교 철학으로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로써 천도교는 후천개벽의 일환에서 독립운동과 근대화 사회운동을 정신적으로 주도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민족운동의 실천 단계를 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의 순서로 추진케 하는 등 구체적 개혁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남녀 · 노소 · 직업 · 사상에 상관없이 다양한 지식층을 천도교에서 추진하는 신문화운동에 합류케 할 수 있었다. 197~198

무장봉기의 역사적 의의를 든다면 자연발생적인 민란으로 시작했던 고부민란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혁명운동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보여준 창의문 · 통문 · 격문 · 폐정개혁안은 무장봉기의 목적과 명분이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사인여천 · 삼경의 인본주의적 후천개벽사상의 현실화 의도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부군의 농민봉기와 무장봉기 사실은 근대적 민중 의식이 어떻게 성장해 갔는가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 p.235

3 · 1독립운동의 초기 민족연합전선 조직 단계에서 천도교 지도층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독립운동의 3대 기본원칙 확정, 기독교 · 불교 측과의 제휴, 독립선언문의 기초 · 인쇄 · 배포, 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구관료 포섭 시도와 교도의 동원, 운동 자금 조달, 독립운동 기금의 해외 송금, 독자적 학생운동의 규합 등 실로 3 · 1운동 추진 과정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거의 모든 준비 업무를 주도하였다.

동학은 우리 근대사의 여명기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서 정치운동을 겸한 종교운동을 전개하였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이후 그를 계승한 역대 교조(최시형, 손병희) 및 주요 이론가(이돈화 등)들은 동학 교리를 시의적절하게 사회사상화하였으니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을 골간으로 하는 동학 천도교의 여러 사상들은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에도 인류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br/><br/>특히 동학의 주체들은 단지 종교적, 사상적으로 이를 향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천주사상으로 포교 활동을, 사인여천사상으로 교조신원운동과 동학농민운동을, 인내천사상으로 범국민적 문화운동과 3 · 1독립운동을, 인내천사상의 합리적 논증으로 신문화운동을, 또한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일제 치하의 치열한 민족독립운동의 형태로 동학 천도교의 이념과 이상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후천개벽운동을 전개해 왔다. <br/><br/>최근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온갖 환경재해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경제위기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면서, 현재까지 인류가 구축해 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학 천도교는 이미 150년 전에 이 세계의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후천개벽사상”으로 정리하여 선포하였다.<br/><br/>오늘날 동학 천도교의 교세가 위축되고, 또한 현대적인 교리체계 정립과 사회적 활동이 미진한 관계로 동학 천도교의 존재감은 턱없이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은 동학 천도교의 근본 의미와 역사적 실체를 차분히 재조명하면서 향후 방향을 가늠하는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br/><br/>동학에 조예가 깊다고 여겨지는 일군의 종교학자 및 현대사상가들(김지하, 김용옥, 오강남, 조동일)은 동학(천도교)에 종교의 미래와 평화로운 인류세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동학 천도교는 한계에 봉착한 기독교나 불교 및 여러 종교학자들에게 신선한 새 지평을 열어 주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현재 ‘저평가’되고 ‘위축’된 동학의 가치와 활동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바람(주문)을 빠뜨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br/><br/>황선희의 『동학 천도교 역사의 재조명』은 그러한 요구에 대한 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