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억, 컥……!”
그러다 어느 순간, 페렛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 끔찍한 소리에 잇따라 쿵, 하고 무언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시아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멋대로 생각이 이어졌다.
‘페렛 씨가 쓰러진 거야.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심장이 쿵, 쿵, 거칠게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내가 마차 안에서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는 엘시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페렛 씨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페렛 씨가 죽은 거야.’
죄책감이 목을 조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엘시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 늦게까지 광장에 남아 있지 않았을 텐데. 리리엔을 따라서 진작 저택으로 돌아갔더라면 좋았을걸.
‘미안해요.’
이토록 지독한 무력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엘시아는 페렛에게 커다란 부채감을 느꼈다. 페렛을 다치게 한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도 그러했다.
엘시아는 자신이 허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공저에 머무른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자신이 진작 대공저를 떠났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걸 그랬어.’
레오디안이 리리엔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을, 구태여 하루빨리 리리엔의 가족을 되찾아 주겠다고 제도로 온 스스로가 너무나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한 결과가 어떠한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고,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겠다고 새로운 선택을 한답시고 하였으나 끝내 이 모양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전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엘시아는 뼈저리게 자책하며 후회했다.
그런 엘시아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엘시아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않고 그저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마냥 흘려보냈다.
그 순간이었다. 엘시아의 몸에서 시리도록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중략)
어스름한 방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정적 속, 엘시아는 조심스럽게 레오디안의 표정을 살폈다. 어느 때와 같이 단정한 낯에서 엘시아를 비난하는 듯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평생토록 간직해 온 엘시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엘시아는 어느 순간부터 제 존재를 주장하듯 거세게 뛰고 있는 심장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제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레오디안과 지내게 되면서부터 종종 찾아들던, 어지러움을 동반한 두통. 크게 아파 본 적 없는 엘시아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엘시아는 통증을 느끼는 이유가 어쩌면 레오디안의 힘에 자신이 노출된 탓이 아닐까 추측해 왔다. 다만 그 힘이 제 것이 될 수도 있다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제 몸에 변화가 생겼을 때, 그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신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래서 엘시아는 제 몸에 어떤 일이 생겨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저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였다. 이는 엘시아가 자신의 안위에는 크게 미련을 두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엘시아는 나직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레오디안은 사실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했지만, 그건 엘시아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저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충동을 느껴 왔어요. 그건 지금도 여전하고요.”
“충동?”
“네, 충동.”
엘시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은 충동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본능에 가까운 욕구였지만 엘시아는 오랜 시간 억눌러 온 본능을 어떻게 달리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보면 허기를 느껴요.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시간 동안 스위티아에게 세뇌되어 온 탓에 엘시아는 식인은 물론이고 짐승의 고기조차 입에 댄 적이 없었고, 지금은 오히려 식인 행위에 혐오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엘시아의 태생은, 괴물로 태어난 그녀의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레오디안이었다. 레오디안에게서는 다디단 향기가 풍겼고, 그 향기가 엘시아는 언제나 곤혹스러웠다. 그는 엘시아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본능을 자극하므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