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구로서 <롤리타>는 틀림없이 심리학 분야에서 하나의 고전이 될 것이다. 예술작품으로서 그것은 속죄로서의 측면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과학적인 중요성이나 문학적인 가치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진지한 독자에게 끼칠 윤리적 영향이다. 이 통렬한 개인의 연구 속에서는 일반적인 교훈이 숨어있다.
--- 서문 중에서
그리고 거기, 허물어진 모습으로, 정맥이 밧줄 모양 불거진 어른 같은 손과 소름 돋은 흰 팔, 얇은 귀, 지저분한 겨드랑이의 롤리타가 가망 없이 지친 17세로, 임신을 한 채 있었다. 한때는 대스타가 되어 2020년쯤에나 은퇴하는 꿈을 꾸었던 나의 여자. 나는 그녀를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분명히,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만큼 그렇게 분명히 나는 그녀를 내가 본 어느 것보다 사랑했고, 지구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희망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단 하나의 희미한 바이올렛 향기였고, 과거에 내가 그렇게 울며 찾아 헤매던 님펫의 죽은 메아리였다
그녀는 하얀 하늘 아래 먼 숲, 황갈색 계곡 가장자리에 사는 메아리고 시냇물을 막는 갈잎이며 바삭거리는 잡초 속의 한 마리 마지막 귀뚜라미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숭배한 것은 메아리만은 아니었다. 내 가슴의 엉킨 핏줄 속에 내가 실컷 불어넣었던 것, 나의 엄청나고 찬란한 죄는 정수만 남았다. 척박하고 이기적인 악덕을 나는 모두 취소하고 저주했다. 여러분은 나를 조롱하고 법정을 모독하지 말라고 야단을 하실 테지만 재갈을 물리고 반쯤 죽는다 해도, 나는 내 가난한 진실을 외쳐댈 것이다.
내가 얼마나 롤리타를 사랑했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롤리타, 창백하고 더럽혀지고 다른 사내의 아이로 배가 부른 여자, 하지만 여전히 잿빛 눈에 검은 속눈썹, 여전히 붉은 갈색에 아몬드빛, 아직도 칼멘시타, 여전히 나의 것. 인생을 바꾸자, 나의 카르멘이여, 어느 곳이든지 결코 우리가 헤어질 수 없는 곳에 가서 살자꾸나. 오하이오? 메사추세츠의 황야? 그녀의 두 눈이 근시안의 물고기로 퇴색해도, 그녀의 젖꼭지가 부풀어오르고 갈라져도,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젊은 삼각주가 찢기고 더럽혀진다 해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사랑스런 창백한 얼굴이, 목쉰 젊은 음성이 그저 스치기만 해도, 사랑으로 가득 차올라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의 롤리타.
--- p.378-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