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는 ‘혐오」중를 인간의 본성의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많이들 합니다. 인간성이 아주 안 좋은 일부의 사람들이 하는 행위 정도로 이해를 하는 거죠. 이런 본성에 근거한 접근도 일정 부분 설명력이 있지만, 저는 우리의 생존이나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진 부분들이 잘못 작동이 되어 생긴 파편이 혐오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펴려고 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혐오를 접근해보면 혐오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장 ‘혐오의 기원: 생존과 공감의 파편」중에서
그렇다면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이렇게 만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배경은 사회 경제적 요인입니다. 1997년에 경제 위기로 한국 사회에는 저성장 시대가 도래해 청년 실업이 늘고 개인의 지위가 취약해집니다. 이렇게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들은 허탈감, 시기심, 불만, 분노, 우울감, 불안 등과 같은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재난, 전쟁, 감염병 등 공동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혐오가 확산되는 이유입니다.
---「2장 ‘혐오현상의 이해와 과제」중에서
이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주류성과 비주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러한 속성이 때로는 주류에 속하고 때로는 비주류에 속한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내가 알지 못하고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그 편견에 기반해 혐오표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일인지 기억하는 것이 좀 더 쉽지 않을까요?
---「3장 ‘혐오의 온상지가 된 인터넷」중에서
하지만 혐오발언에 동참하는 행위들, 예컨대 혐오발언을 작성하거나, 이를 별생각 없이 공유한다거나 아니면 그저 간단하게 ‘좋아요」중를 누른다거나 하는 경우에도 본인이 일종의 공개 선언을 하게 됨으로써 해당 발언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게 되고 나아가 그 행위의 결과로 다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는데, 이런 셀프 효과(self-effect)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논의가 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4장 ‘온라인 혐오 번식의 원리」중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쯤이면 독일 국민은 분노했어야 마땅합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입술이 사라지고 나면 치아가 시리다고 하는 것인데, 처음 누군가를 공격하고 폄하할 때 그걸 용인하고 방조하고 속으로 동조하게 되면 그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다른 누군가가 또 타깃이 되고, 결국에는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일인들은 그 생각을 못 했던 겁니다.
---「5장 ‘홀로코스트: 혐오와 차별의 종착역」중에서
인류학자가 이해하는 역사는 이런 겁니다. 역사라는 것은 한 문화권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절절히 살아나간 삶의 궤적의 총체입니다. 동시에 한 문화권 전체가 품고 공유하는 생생한 기억의 총량입니다. 따라서 모든 문화권 구성원들은 나름대로 다른 역사적 기억과 역사적 삶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역사를 경험하고 이룩했던 사람들의 주체적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지배하고, 억압하고, 식민했던 사람들의 논리로 볼 건가, 이것은 어마어마한 관점의 차이를 불러올 것입니다.
---「6장 ‘이슬람포비아를 통해 본 혐오의 역사」중에서
이러한 고백과 용서와 배상으로 진행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회복적 정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파국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백인들은 다수의 흑인들이 집권하면 본인들은 그동안의 식민 지배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복수의 대상이 될 거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그 오랜 인종차별 정책의 끝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투자한 것이고 그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회복적 정의에 둔 것입니다.
---「7장 ‘차별과 학살에서 치유와 회복으로」중에서
코로나19와 환경재앙이 창궐하고 있는 요즘이야말로 혐오 바이러스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희생양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은 또 다른 마녀재판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혐오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성찰해 혐오를 없앨 수 있는 진정한 공감의 세계로 나아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8장 ‘비극의 역사에서 배우는 기억과 성찰의 중요성」중에서
그럼 우리의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요? 앞으로 어떻게 사고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대안은 꽉 막힌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냉전적 편견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서양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이분법, 선진국 대 후진국, 우월함 대 열등함,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9장 ‘독일 반유대주의의 지성사: 인종주의와 반공주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