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죽음의 자화상〉은 피카소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크레용으로 쓱쓱 그린 이 자화상은 그러나 녹록치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먼저 동공 크기가 서로 다른 두 눈이 인상적이다. 신경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보면 뇌 속에 병변이 있다고 할 소견이지만, 사실 불안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짝짝이 눈동자는 흔들리고 분열된 자아를 표현한 것이다. 이 대단한 천재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뒤에는 흔들리고 있다. 이 흔들림은 뭉개진 분홍색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얼굴에 비해 턱없이 좁게 그려진 어깨, 깊고 유난히 뚜렷한 검은 콧구멍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 p.134 '죽음의 자화상' 중에서
프라 안젤리코의 〈팔라디아를 치료하는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아누스〉를 보면 환자의 집을 나서는 의사에게 환자 가족이 감사의 표시로 금품을 내밀고 있는데, 의사는 한 손으로 사양의 표시를 하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로 금품을 받고 있다. ‘의술을 펼치는 대가로 어떠한 금품도 받지 않겠다’는 스스로 한 서원을 어기고 있는, 요샛말로 ‘촌지’를 받는 장면이다.
촌지를 ‘밝히는’ 의사는 곤란하다. 또 퇴원을 앞둔 환자가 ‘촌지’로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 또한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저 의사 선생 때문에 내가 살았다’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내미는 촌지를 무턱대고 거절하는 것 또한 어렵다. 택시 타고 가시라고 아드님이 드린 돈을 아껴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고의춤에서 꺼내 손에 쥐어주시며, “선생님이 건강해야 내가 오래 살지. 꼭 맛있는 것 사 잡숴” 라며 몇 번이나 다짐하던 할머니, 그리고 치료 후 숨이 훨씬 덜 차서 산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직접 딴 송이버섯 몇 송이를 신문지에 싸서 어색하게 내밀던 할아버지. 의사는 이러한 촌지를 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가 어두운 이 분들을 위해 큰소리로 외친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이러니 의사가 개혁의 대상인가 보다.
--- pp.275~276 '의사들의 수호성인도 촌지를?' 중에서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은 무엇보다도 화려한 옷차림과 역시 으리으리한 배경이 눈길을 끈다.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기보다는 화려한 옷차림과 거만한 자세, 약간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위풍당당한 지배자, 절대권력자의 위압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루이 14세의 얼굴을 세심히 살펴보면 윗니가 빠진 합죽이(무치악無齒顎)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처음에 위풍당당함에 속아 넘어가 이 뽑기 전의 초상화인 줄 알았는데 이 그림을 본 치과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 전문가의 눈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절대군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돌팔이 의사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어 흥미롭다.
어느 책에서 본 유머 한 마디. 치과에서 이를 뽑고 나서 청구서를 받아든 환자가 외친다. “아니, 금세 뽑았는데 이렇게나 비싸요?” 유들유들한 치과 선생님의 태연한 대답, “원하신다면 아주 천천히 뽑아 드릴 수도 있는데…….”
--- p.305 '돌팔이 의사의 이 뽑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