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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두고 간 이야기
중고도서

법정 스님이 두고 간 이야기

: 30여 년간 법정 스님 곁에서 보고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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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464g | 145*205*20mm
ISBN13 9791195322190
ISBN10 1195322194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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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고현
高鉉
1949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한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불교와 인연이 되어 우천(又泉)이란 수계명으로 지난 50여 년 동안 불자의 삶을 살아왔다. ‘불교미술 현대화, 불교디자인 개척화’라는 화두를 안고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일러스트, 단청, 탱화, 디자인 등 국내외에 발표한 200여 회의 작품이 모두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디자인 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고현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스승 법정에게 보고 배운 모든 것을 쓰고 그리며 이 책에 집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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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인데도 이마에 땀이 배고 등줄이 후줄근한 것이 올여름도 야무지게 시작될 모양이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죽림을 지나 돌계단 위에 올라서니 마당 한 켠에 아뿔사, 스님께서 이상한 자세를 하고 계셨다.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넣은 채 나를 거꾸로 보고 계시다가 순간 자세를 풀고 반가워하셨다.
“어서 와요. 아직 이른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주암댐 근처에 동아리 제자들과 MT 왔다가 혹시나 싶어 왔는데,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봅니다. 그런데 스님, 조금 전 자세는……?”
“아,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는 중이었소. 마침 다로에 물을 올려놨는데 잘 오셨소.”
“스님, 어린 시절에나 하던 그런 놀이를 지금도 즐기시나요?”
“왜 그러면 안 됩니까? 모양새는 좀 꼴사납지만 어린 시절 느낌과는 전혀 달라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고정관념 치유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어요.”
“네에? 거꾸로 보기를 통해 고정관념을 치유한다고요?”
“보는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새로운 면을 인식할 수 있어요. 우리들 인식 속에 들어와 이미 굳어져 버린 선입견을 벗어나야 하는데, 내 눈이 열리면 열린 눈으로 보는 세상도 달라 보이지요. 고정관념 지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의사는 없어요.”
---「화상畵想을 얻다」중에서

“내가 예전에 모임 하나 만들고 싶다는 말 기억하시지요?”
“‘나누는 기쁨’ 말씀이신가요?”
“그래요. 내용과 성격은 그대로인데 명칭은 ‘맑고 향기롭게’로 바꿨습니다. ‘나누는 기쁨’도 오래도록 생각해왔는데 의미전달을 보다 확실하게 하고 싶다 보니 바꾸게 되었는데, 왜 느낌이 별로인가요?”
“아닙니다, 스님. 다만 표어나 슬로건에 주어가 빠지면 호소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바로 그거예요. 생략된 주어 대신 어떤 주어를 앞에 붙여도 뜻이 통하도록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들의 ‘정신을’ 맑고 향기롭게,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우리들의 ‘환경을’ 맑고 향기롭게. 어떤 주어를 앞에 붙여도 뜻이 통하는, 그래서 오히려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겠어요? 거기다 진흙탕 속에서도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의 생리와 아름다움을 접목시켜, ‘맑고’는 내 자신의 마음을 먼저 맑히고 ‘향기롭게’는 바깥세상을 향한 자비행의 실천으로.”
---「작은 등불 하나」중에서

당신 스스로 수십 년간 글을 써온 터라 무심코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에 새로운 해석을 내리셨다. 예를 들어 ‘자연보호’ 운운하면 무안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을 하셨다.
“자연이 언제 우리에게 보호해달라고 부탁한 일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 대한 오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소립니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모임에서만이라도 자연보호가 아니라 ‘자연보존’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한번은 모 지방에서 행사명에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하마터면 행사를 취소당할 뻔했다. 불우不遇라는 단어의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느냐는 면박이 날아왔다. 그 현수막과 각종 인쇄물, 어깨띠 등 모든 것을 폐기 처분하고 ‘우리 이웃 서로 돕기 바자회’라고 고쳐 써야 했다.
심지어 자연생태환경 운운하는 단어도 ‘자연생명존중’으로 고쳐 부르게 하셨다. 우리가 하는 일에 행여 겸손·하심·검소·침묵·평등 대신에 교만·아상·풍족·자랑·군림의 언행이 끼어들까 철저히 감시하셨다.
---「국어 공부 다시 하다」중에서

스님께서도 여느 때와 달리 회의 분위기가 내내 무거웠음을 아시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시며 하나하나 안부를 물으셨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들은 스님께서 말한 ‘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화두에 빠져 예전처럼 밝지 못했다. 꾸역꾸역 먹고만 있을 뿐 누구도 말이 없었다.
공양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각자의 차에 시동을 걸면서 한마디씩 외쳤다. 차가 없거나 가지고 오지 않은 법우들을 동승시키겠다는 오래된 우리들만의 우정이었다.
“서대문! 신촌!”
“마포! 충무로! 마포!”
“압구정! 강남 터미널!”
“우이동!”
그때였다. 스님도 시동을 걸어놓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영동고속, 강원도!”
주차장에서 갑자기 빠앙 웃음이 터져버렸다. 무거운 분위기를 한 방에 날려버린 스님의 조크였다.
“강원도 무료야! 없어?”
---「한 방에 날리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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