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미지에는 우리의 시선을 매혹하는 기이한 세부가 존재한다. 이런 세부 때문에 아우라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아우라가 무엇인가? 신비에 가까운 감정으로 의미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비지성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지극히 심정적인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푼크툼이 있는 이미지는 아우라와 접맥되는 것이다. 여기 미술작품의 디테일, 특히 몸의 세부들은 분명 시선의 유예, 방황, 정지, 황홀경을 불러일으키는 번뜩이는 순간을 제시한다. 이처럼 시선을 매혹
하는 수많은 지점에는 어떤 운율 같은 것이 존재한다. _「덜 중요한 부분에 사로잡히다」에서(7쪽)
초상화 속 부부의 시선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먼저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시선은 그림 앞에 서 있는 우리를 향하고, 자신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정면으로 그들의 시선을 감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이들의 ‘시선’은 ‘응시’로 전환된다. 시선은 그저 보는 것(look)이며, 시선과 시선이 만나면 응시(gaze)가 된다. 응시란 “나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보는 것”이다. _「눈?나를 바라보는 너」에서(43쪽)
입 모양은 카드놀이를 하든, 책을 읽든, 연필을 깎든, 비눗방울을 불든,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아마 샤르댕이 그들에게 보내는 섬세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다. _「입술?입술로 그리는 표정」에서(81쪽)
니케와 비너스의 팔의 부재는 미의 세계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부재의 형상은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해석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준다. 사라진 것, 잃어버린 것, 결핍된 것, 결여된 것은 그 대상을 더욱 그리워하게 하고, 아쉽게 만들고, 애끓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재는 잉여와 과잉보다 더 완벽하다. _「팔?부재하는 것의 힘」에서(148쪽)
실제로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규칙성이 은밀하고 단정하며 내밀한 형태에서 솟아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것이다. 이 흠집은 배꼽처럼 그려진 것이 아니라 성인의 몸에서 관객을 주시하는 하나의 눈처럼 그려졌다는 사실을……. 얼마나 문학적인가? 이 눈은 세바스티아누스의 또 하나의 눈으로서 자신의 처형 장면을 구경하고 있는 관객에게 되돌려주는 응시라는 것인가? 따라서 이 배꼽은 눈과 같다. 미세한 방식으로 그려진 이 ‘배꼽?눈’은 거기 있으면서 시선을 끌지만, 보이지 않기 위해 그려진 디테일이다. _「배와 배꼽?인체의 중심에서」에서(171쪽)
서양미술사는 웃는 얼굴을 좀처럼 기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초상화는 근엄하고 엄숙하며 진중하고 무표정하다. 그런 까닭에 미소는 늦게, 폭소는 그보다 뒤늦게 등장한다. 웃음은 고사하고 미소조차 때로는 경박하고 천한 것이며, 영원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_「미소?애매하고 다면적인 웃음」에서(269쪽)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비너스와 큐피드의 키스다. 피상적으로는 사춘기가 된 소년과 어머니의 성적인 장난을 그린 그림이라지만, 낯설고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유려한 선과 우아한 색채와 같은 고전적인 화면 구사력 덕분에 그림은 덜 외설적으로 보인다. 사실, 이 은밀한 키스에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비너스와 큐피드 둘 다 사랑의 신이다. 그러니 이 그림의 의미는 근친상간적 의미를 초월하여, 사랑의 나르시시즘적인 속성, 즉 ‘사랑이 사랑을 사랑한
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_「키스?숨결과 영혼의 결합」에서(294쪽)
앞모습이 의식 혹은 페르소나라면, 뒷모습은 무의식이다. 그런고로 뒷모습은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얼굴과 손짓은 마음을 숨길 수 있지만,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도 않으며,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표피가 아니라 내면인 것이다. _「뒷모습?가까우면서도 먼」에서(369쪽)
맨 처음 이 조각상은 내게 여성도 남성도 아니고, 어른도 아이도 아닌 환상이었다. 이 조각상의 뒷모습에 사로잡힌 이유는 바로 그것이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 같았기 때문이다. 진리를 그리스어로 알레테이아(al?theia)라고 부르는데, 원래 뜻은 ‘탈은폐’(비은폐)다. 그리스인들은 진리라는 것을 단순히 드러냄 혹은 노출이 아니라, 숨겨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러니까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로서의 진리를 드러내는 가장 명료한 동시에 모호한 메타포가 아닐까. _「뒷모습?가까우면서도 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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