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스-'재능이야.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타고난 천재성이지. 이 점을명심해야 돼. 수학자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말이야. 만약 네가 부모로부터 수학에 대한 천재적인 유전인자를 이어받지 못했다면 넌 평생 헛수고만 하다가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거야. 아마 뛰어난 범재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래 봤자 역시 범재일 뿐이야.' 새미- '모든 인간은 스스로 택한 절망적인 상황에 절망할 권리가 있는 거야.'
--- pp.50-51,---p.71
처음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불완전성 정리는 나한테서 노력의 원천인 확신을 앗아가 버렸어. 설령 연구에 할애할 목숨이 100개나 된다고 해도 그 문제에 매달리는 한 절대 출구를 찾지 못할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불완전성 정리는 내게 가르쳐줬지. 사실 나는 출구가 아예 있지도 않거나 영원히 헤멜 수밖에 없는 미로에 갖혀 있었는지도 몰라.
--- 본문 중에서
'이런 말이 있더구나.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기침, 돈, 사랑이 그것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 삼촌은 하나가 더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게 뭐냐구? 바로 수학적 재능이지.'
'하지만 네 경우 외관과는 별 상관이 없었어. 너한테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없었지. 그게 뭔 줄 아니? 그건 오직 한 길로 끝까지 정진하려는 집념이지. 만약 너한테 진정한 의미에서 재능이 있었다면, 수학을 하는 데 굳이 내게 축복해 달라는 따위의 구걸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냥 밀고 나갔으면 나갔지. 그게 바로 첫번째 증거였어!'
삼촌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나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재능이 없다는 걸 그렇게 잘 아셨으면서 왜 그 해 여름 제게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도록 하셨어요? 어째서 제게 스스로를 바보 같은 놈이라고 여기도록 하셨느냐 이 말입니다!'
삼촌은 가볍게 대꾸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니? 골드바흐의 추측은 일종의 안전 장치였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 네가 엄청난 재능을 어디에다 떼어 놓기라도 했다면, 그 경험이 널 그렇게 좌절시키지는 않았을 거야. 또 네 말대로 그렇게 '끔찍한' 경험도 아니었을 거구. 오히려 흥미로운 가운데 자극과 격려가 되는 경험이었겠지. 나는 결정적으로 네 정신력을 시험해 봤던 거야. 내가 내준 문제를 푸는 데 실패한 후에, 물론 못 풀 거라고 예상했지만, 어쨌든간에 네가 더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수학자가 될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너는......, 그래, 너는 답조차 물어보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네 무능력을 증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거야!'
--- p.189-190
'뭐야? 이봐. 내가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면 이처럼 한가하게 앉아서 너랑 저녁이나 먹고 있지 않을 거야. 교수가 됐어도 한참 전에 됐을 걸. 게다가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도 수상했을 테고 말이야.'
새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섬광처럼 빛나며 무시무시한 진실을 밝혀 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새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나서였다.
--- p.64
독창적인 수학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독은 일반적인 고독과 다르다. '고독'이라는 말뜻 그대로,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접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진정으로 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이 그가 느끼는 감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18
그렇다면 과연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던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남들의 비웃음으로부터 삼촌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만큼은 최대한 명확하게 밝혀 두겠다. 내 공식적 대답은 `아니오' 이다
--- p.249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가슴 깊이 새겨 넣은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expose himself to whatever disappointment he choose)'는 새미 엡스타인의 부르짖음이다. 그 대상이 자신이 깊이 사랑하는 것일 경우에는 그 절망마저 한없이 아름다울 것이므로.
--- 감수자의 말 중에서
과학자들이--심지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추상적이며 야심적인 수학자들조차-인류의 행복을 위한 진리 추구라는 명목에 자극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그럴 듯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신이 많은 학자들이 물질적 이득에 초연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들 중 야망과 강한 경쟁 심리에 이끌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물론 수학적 위업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경쟁자의 범의는 반드시 제한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성과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그 범위는 더 제한된다. 우승컵을 거머쥐려는 경쟁자들은 선택된 소수, 즉 무리 가운데 출중한 사람들이므로 그 경쟁은 진정한 거인들끼리의 싸움이 된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