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건질 수 있는가? 이들을 빛으로 인도할 스승은 없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육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시할, 교육에서 진리의 길은 없는가? 이 모든 비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마침내 교육에 광명이 임하게 할 방법은 정녕 없는가? 이 꿈을 꾸고, 이 꿈을 노래하고, 이러한 세상이 오게 할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빛이 너무 희귀한 세상에 살고 있다. --- p.26
우리가 할머니 말씀대로 결정하고 살아가면 순탄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인생의 진리를 통달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계신 천사셨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카이스트(KAIST) 박사 출신의 대학 교수가 가정사의 고민을 ‘무식한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는 것이 참 이상한 일이다. --- p.36
이삭은 아버지의 길을 생각하고 그 우물을 다시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찾으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윤인구가 부흥의 우물일지 모른다.’ 이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것처럼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세계 최고의 신학을 공부하게 하셨던 윤인구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와 부흥에 대한 소망이 내 안에서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 p.67
“총장님께서 가장 기뻐하신 때는 언제입니까?” 나는 이 질문으로 윤인구와 대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기대하고 있었다. ‘총장 취임하실 때가 아니었을까? 부산대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 대학본관(현 인문관)을 완공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나와 학생들은 끈기 있게 박 교수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침내 건져 올린 교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우리 만날 때 가장 기뻐하셨지요.” 내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대학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기념비적 사건과 동떨어진 개인적인 회상이었다.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철수를 결정했다, --- p.82
나는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그때까지 교수로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진정 존재 자체로 기뻐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교수로 생활하면서 자기중심적이었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우수 교수 대열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쳤다. 대학교에 부임하자마자 학생들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했다. 내가 지도하는 실험실 대학원생들은 1년 365일 휴일이 없었다. 내가 매일 학교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수의 권위를 마음껏 즐겼고, 거기에 도전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니 가가멜 별명을 얻은 건 당연했다. --- p.85
나는 이제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교육의 본질적 뜻을 다시 제대로 회복하는 날에 교육의 부흥이 올 것이다. 빛이 비취면 어둠은 즉시 물러난다. 교육이 본질을 찾고 나면 비교육적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냇가에서 흙탕물을 일으켜 시냇물이 검게 되어도, 산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맑으면 그 시냇물은 금세 맑아진다. --- p.88
‘대학 교육은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윤인구의 소신이었다. 그래서 민립대학을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한 것이다. 그 원칙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독일과 같이 모든 대학은 국립으로 하고, 대학 등록금은 국가에서 100퍼센트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그는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그만 두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강조했으며, 장학금을 많이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원했다. 학생들은 윤인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 p.146
예수님이라면 어떤 꿈을 꾸실까? 인류 전체의 구원을 꿈꾸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 윤인구는 ‘예수님과 비슷한 생각의 크기’를 가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눈앞의 현실만 생각하는 근시안적 사고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하나님의 창조부터 종말까지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여 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렇게 원대한 꿈을 가지는 자가 되기 원한다. _p150
이처럼 비참한 현실의 생에서, 그리고 ‘이 절망적인’ 암흑 속에서 참된 인물을 살려내려면 하늘을 열어 광명을 저들의 가슴 속으로 던져야 할 것이며, 장벽을 헐어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p.152(윤인구의 총장 취임사 중에서)
나는 윤인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믿는 자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꿈꾸지 않으면 하루라도 더 살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절망하든지 꿈을 꾸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타협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함을 아는 자는 절망할 수 없다. 세상과 타협할 수도 없다. --- p.161
보통 사람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꿈, ‘위대한 꿈’은 인간 영역 밖의 꿈이다. 그 위대한 꿈을 내가 꾼다면, 그것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의 뜻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애초에 윤인구의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태초부터 예비된 주님의 꿈이었다. 윤인구는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받았던 것이다. --- p.167
나는 꿈도 없이 현실의 무게에 치여 힘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예수께서 유대 광야에서 절규하며 외치셨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음성이 내 귀에 분명히 들리는데,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다.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처럼, 나는 끝없이 하늘로 사라지는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세월이 오래 지난 후 내 친구의 마음속에 내 노래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또 그것을 기도하며,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 p.175
나는 어느 날 동이 틀 무렵 인문관을 찾았다. 아침 햇살이 유난히 붉은 날이었다. 해가 붉은 빛을 내며 금정산과 인문관을 함께 붉게 물들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인문관에 뿌려지는 것이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느꼈다. 이때 그 붉은 빛이 십자가 위를 지나 인문관에 도달하고, 인문관 내벽은 온통 붉게 물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가슴에 뿌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곧 하늘의 광명이 임한다. 그때 모든 것이 새 생명으로 살아난다. 인문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비밀을 형상화하였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