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마시려고 떠놓은 물 위에 부서질 듯 말 듯 살얼음이 끼었다. 분명 잠들기 전, 라디에이터 온수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침 5시 30분, 일어나야 했지만 머뭇거렸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수도원 북쪽 창문, 얼음꽃이 환상적인 수를 놓았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조차 추웠다. 숨을 내뱉는 순간 뿌연 담배 연기마냥 침대 주변이 입김으로 가득 찼다. 두툼한 솜이불은 묵직하게 몸을 누르며, 조금 더 있다가 일어나도 된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내가 왜 마음껏 늦잠 자도 되는 대학 생활을 보내지 않고 여기 있는지 참 기가 막혔다. 나의 ‘응답하라 1994’는 추운 수도원 북쪽, 냉동실 같은 작은 방에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저 이불을 끌어당겨 꼭 쥐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기도보다 욕이 먼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 p.19,「수도자가 뭔지 몰랐다」 중에서
수도원에 들어온 첫해, 원장 이 아오스딩 형제님은 아침 미사 후 거룩한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형제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하루 세끼를 굶든지 아니면 얻어먹든지 알아서 해야 했다. 형제들은 이날을 ‘사막 체험’이라 불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막 체험이라는 이름은 참 의미가 깊다. 심리적으로 해석하자면 사막에 홀로 있듯 나와 직면한다는 뜻이고, 가톨릭 신앙적으로는 온전히 신을 향한 시선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했다. 심리적이든 신앙적이든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인간적으로 배가 고팠다.
--- p.53-54,「노숙자가 되다」 중에서
‘바라봄’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었다. 어떤 것을 해결하거나 바꾼 것이 아니었음에도, 단지 그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호 소통이 되었다. 인간 심리는 파헤치고 뒤집어 뜯어고치는 것이 아닌 바라봄의 문제였음을 안 게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실제로 정신분석을 통해 내면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거나 없앤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저 문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믿음만으로 해결된다는 맹목적 신앙이나 기복의 굴 레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신앙은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바라보지 못하던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 더욱 성숙할 수 있음을 알았다.
--- p.94,「꿈의 해석1」 중에서
좌관의 기본은 ‘숨쉬기’다. 아주 천천히 숨을 쉬고 더 천천히 숨을 내쉰다. 오직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한다. 보통 가부좌를 틀고 앉지만 초보자는 의자에 앉아서 하기도 한다. 어떤 생각이나 기억의 잔상을 따라가지 않고, 그저 천천히 숨을 쉰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가도 그런 자기를 인식하고는 다시 숨 쉬는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생각을 멈추고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만 천천히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있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 p.212,「‘있음’이 훅 들어왔다」 중에서
가재에게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입시의 무게감을 견디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지만, 수도원은 세상에서 보호된 좋은 공간이었다. 가재와 내가 다른 점은 가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나는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재가 드럼통 속에서 안전하게 머무르기를 원할지라도 나는 그에게 진짜 골짜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정을 마치고 하산하는 날 너를 데리고 내려가 골짜기 시냇가에 풀어주겠다고 말을 건넸다.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골짜기의 시냇가는 지금껏 네가 머문 드럼통 속 세계와는 천지 차이라고 일러줬다. 내 말을 들은 가재는 두려운 듯 더 웅크린 채 드럼통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 p.292,「모두 제자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