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 양자역학이 어떤 학문인지 진지하게 알고 싶어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자면 우선적으로 습득해야 할 수학적인 기초 재료들이 있게 마련이다. 습득 과정은 한 단계의 수학적 훈련을 마치고 나면, 그보다 한 단계 놓은 수학적 훈련의 문턱에 도달하는 식이다. 즉 산수, 유클리드 기하학, 고등학교 대수, 미적분학 일반, 그리고 부분적인 적분 방정식, 벡터 계산, 수리 물리학의 특별한 몇 가지 함수들, 그리고 군론(group theory)을 차례로 배워야만 한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원 입학 초기까지 거의 15년을 그 과정에 투자하게 된다. 이런 학습 과정은 실제로 양자역학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다. 다만 양자역학에 좀 더 깊이 접근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학적 구조를 튼튼히 세우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입문 의식을 거치지 않은 일반 청중들에게 양자역학의 아이디어 몇가지를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는 과학 전도자의 임무는 힘겨운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양자역학의 대중화가 성공하지 못한 부분적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 수학적 복잡성에 양자역학 자체가 매우 극단적으로 비직관적이라는 사실이 결합된다. 그것에 접근 할 때 상식은 거의 아무 소용이 없다. 리처드 파인만이 언젠가 말했듯이, 그거 왜 그런 식이냐고 묻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단지 그냥 그럴 뿐이다.
자, 이제 우리가 어떤 음침한 종교나 뉴에이지의 교리, 혹은 어떤 주술적인 믿음 체계를 회의적인 입장에서 접근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도 무언가 흥미로운 내용이 있단는 것을 안다. 우리는 관련자를 찾아가 알아들을 수 있는 간략한 설명을 요청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간단히 설명할 수 없으며, 거기에는 '신비'가 가득차 있다는 답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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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디오, 털레비젼, 영화, 신문, 책, 컴퓨터 프로그램, 테마공원, 교실 등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과학을 전달하기 위해 한결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데는 중요한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오용될 가능성은 많지만 과학은 여전히 신생 산업국가들이 빈곤과 퇴보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황금빛 통로가 될 수 있다. ...
둘째 과학은 세계를 변화시킨 기술들이 가져올 위험, 특히 우리의 삶이 의존하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하여 경고한다. 과학은 가장 중요한 조기 경보 체계를 제공한다. 셋째 과학은 우리 종, 생명, 우리 행성, 우주 등의 기원과 본성 그리고 그 운명의 심오한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준다. ... 넷째 과학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일치하며, 많은 경우에 구분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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