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소·통·하·려·면 브레이크를 잡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는 틱낫한 스님은 글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여러 권의 산문집과 시집을 집필했다. 그런데 스님의 취미는 의외로 상추 가꾸기란다.
어느 날, 스님을 찾아온 미국의 한 석학이 상추를 가꾸고 있는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은 상추 기르기에 신경 쓰지 마시고 시만 쓰십시오. 상추는 누구나 기를 수 있지만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시를 써도 모자랄 판에 상추를 가꾸며 시간을 버리고 있는 스님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스님이 화답했다.
“나는 상추를 가꾸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틱낫한 스님에게 있어 시가 가속 페달이라면 상추는 브레이크인 셈이다.
자신이 꿈꾸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목적지에 가기 위해 가속 페달만 밟다 보면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것은 저당 잡히고 만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던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힘들다. 도착하기 전에 지치거나, 도착했으나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목적지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헝그리 정신으로 내달리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삶의 브레이크다. 브레이크의 참맛을 알고 나면 차에 올라타는 그 순간부터 이미 삶의 소풍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력 없이도 계절의 오고 가는 것이 느껴지고, 늘 쫓기고 조급했던 마음을 버리고 달리는 길 위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삶에서 가속 페달보다 브레이크가 더 필요한 것이다.
37 소·통·하·려·면 자존감을 가꿔라
오래전 미국의 한 마을에 천연두가 발생한 적이 있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이라 이 돌림병은 마을의 거의 모든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다섯 살 소녀 그레이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얼굴에 열꽃이 피고 고열이 지속되었다. 천연두로 인해 이미 그레이스의 오빠와 동생을 잃고 난 뒤라, 엄마는 어떻게든 그레이스만은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 열꽃 하나하나를 뾰족한 것으로 파냈다.
다행히 천연두는 나았지만, 그레이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흉터들이 남게 되었다. 그레이스가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자 가족들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그녀를 ‘괴물’이라 놀려댔고, 그레이스의 마음은 더욱 상처를 받았다.
“얘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지 한번 들어보렴.”
엄마는 눈물로 얼룩진 그레이스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어렸을 적에 천연두라는 큰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단다. 그 병은 네 오빠와 동생의 생명을 빼앗아갔지. 이웃의 많은 아이들도 죽었단다. 하지만 하나님이 너만은 살려주셨단다.”
“왜요?”
그레이스가 눈물을 멈추고 엄마에게 물었다.
“넌 소중하니까. 그리고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아이인지를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네 얼굴에 천연두 자국을 남기셨단다. 그래서 이건 네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표시야. 네 이름이 그레이스, 즉 ‘갚을 수 없는 선물’인 이유이기도 하지.”
엄마는 그레이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하나님이 너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너 역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단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그레이스는 ‘괴물’에서 ‘갚을 수 없는 선물’이 되었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타인을 소중히 여기라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며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고, 한번은 파티에서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발견하고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남학생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반응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 얼굴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을 좀 주세요.”
남학생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 앞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레이스는 다시 그 남학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제 얼굴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을 좀 주세요.”
여전히 밝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남학생은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이후로 그들은 좋은 만남을 유지해 나갔고, 마침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후 남편은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고, 그레이스는 하원의원이 되었다. “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꽃은 우리가 그것을 ‘꽃’이라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꼴이 잘났든 못났든, 나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이고, 그것을 내 안에서 인정해 주어야 비로소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40 소·통·하·려·면 열등감의 때를 벗겨라
소그룹에서 만난 한 여인은 쉰이 넘은 나이에도 곱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단아했다. 게다가 젊어서부터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살림도 일구어놓았다. 그럼에도 그분의 머릿속은 온통 ‘초졸’이라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어 자신의 아름다운 본질을 보지 못했다.
가난한 살림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그 시대의 장녀들이 그랬듯 동생들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양보해야 했던 수많은 것들 중 학업에 대해서만은 유독 더 많이 억울해 하고 부당해 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연세 많은 어머니에게 원망 섞인 말들을 토해낸다고 했다. “그때 나 중학교 좀 보내주지.”
그는 3분 스피치 시간에 가끔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대화 중간에 꼭 한두 개씩 어설픈 영어 단어를 끼워 넣었다.
“이것은 나의 미스테이크예요.”
“그것을 캄프라치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가 안쓰러웠다. 열등감이라는 마음의 묵은 때가 그분을 상처 내고 있는 것이 속상했다.
솔직히 사람들은 그의 학력에 관심이 없다. 각자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아름답고 자신의 일에 열심인 사람인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열등감에 관심이 없다. 우리의 몸매가 훌륭한지 아닌지, 부모가 대학을 나왔는지 무학인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우리가 초졸인지 대졸인지 관심 둘 만큼 여유가 없다. 관심을 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나 자신밖에 없다.
61 소·통·하·려·면 가장 귀한 것을 써라
얼마 전에 강의 차 아내와 함께 필리핀에 갈 일이 있었다. 아내는 결혼할 때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쌀독에 넣어두고 왔다면서, 혹시 도둑이 들어도 설마 거기까진 찾아내지 못할 거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나라고 별다르진 않았다. 나 역시 결혼할 때, 장모님이 해주신 정말 좋은 스위스 시계는 장롱 깊숙이 숨겨두고서 그것과 똑같은 중국산 짝퉁 시계를 차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것이 이불이고 시계였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삶이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진짜 삶의 소중한 것들은 저쪽 어디에다 숨겨두고, 짝퉁 시계를 차고, 막이불을 덮으며, 끼지도 못할 다이아몬드 반지를 쌀독 속에 숨겨둔 채 좋아라 하며 살고 있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가.
우리는 언젠가부터 정작 자기 삶의 소중한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꼭꼭 넣어두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며 안심하곤 한다. 장롱 안의 비단 이불로, 쌀독 안의 다이아몬드로, 통장의 잔액으로, 마음속의 사랑으로.
내려가야 할 것이 걱정되어 산행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 염려되어 죽을 듯 사랑하지 못하고 죽을 듯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산 삶일까, 죽은 삶일까.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