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평범한 삶, 이전의 사회, 이전의 정치적 상황을 원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며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평화로운, 다시 말해 평범한 변화나 점진적인 발전을 바란다면 자연스럽게 보수 세력을 선택할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IMF 경제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도 결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임을 앞서 확인하지 않았나. 그 후 박근혜 정부 역시 탄핵이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문재인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다.
--- pp.51~52
고학력 중산층 시민 가운데 다수가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이른바 사회의 진보적 의제들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민의 안정적 삶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치적 자각 탓일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사회보장제의 확산, 소수자 집단의 소외 방지, 다양한 정치적 시각의 체제 내 수용,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 자유, 빈부격차 해소, 노동자 권익 향상,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위 강국으로부터 독립적 지위 확보 등은 누가 보아도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누구도 악다구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 pp.64~65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추동한 20대 남성과 여성의 갈라치기는 그로부터 고작 석 달도 안 돼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더 강력하게 드러났다. 모든 갈라치기, 이른바 편가르기가 그러하듯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질 것이고, 대한민국의 21세기는 통합보다는 지역, 세대, 성별, 아파트 평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통일과 반통일, 친미 외교와 중립 외교로 분열될 것이다.
--- pp.74~75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자들은 과도한 세금폭탄이라는 보수 언론의 비난에 못 이겨 결국 타협점을 찾았다. 이러한 타협으로 무슨 성과를 거두었을까? 아무것도 못 거두었다. 선거에서는 졌고, 목표로 한 불로소득 환수도 이루지 못했다. 처음부터 보수 언론은 어떤 정책을 펼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 언론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맞추려고 한 것 자체가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었다.
--- p.87
2020년 4월 이후 대한민국의 ‘혁명적’ 국회에서 한 일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오직 2022년 대선이 끝난 후 이른바 ‘검수완박’(사실 이것도 검찰과 보수 언론의 의도적인 프레임이 담긴 표현이다)으로 불리는,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법안을 통과시키는 프로파간다적 행동만 했을 뿐이다. (…) 그렇다면 혁명적 권한을 부여받은 진보 세력은 국회를 구성하자마자 어떤 일을 해야 했을까? 첫째, 국가보안법 폐지. 둘째, 정치 체제(국회) 변경. 셋째,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토지 공개념 확립. 넷째, 미완의 과제로 남았던 사학법 개정.
--- p.90
대부분 정치 선진국들에서 다당제가 일반적인 것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선택지가 두 개밖에 안 되는 경우, 양당은 특별히 세밀한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사회는 크게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으로 나뉘는바, 이들에게는 자신들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주류 정치 세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차악(次惡)을 선택하거나 선거를 포기하는 행동을 택할 수밖에 없다.
--- p.111
그러하기에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할 때다. 시민들이 나서서 2024년 4월 이전에 나라를 제대로 만들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은 보수 세력에 내주었지만, 아니 내주었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이 만든(‘만들어준’이 아니다. 시민이 ‘만든’ 입헌적 혁명 권력이다) 권리를 이용해 시민이 바라는 바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있는 것이다. 촛불을 들자거나 점잖게 각성을 요구하는 따위의 칼럼을 쓰는 행위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이제 상식적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p.118
향후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나아갈까? 그 모습을 앞서 구현해보자.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크게는 다음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첫째, 보수 언론과 함께, ‘거야(巨野) 국회 때문에 국정과제가 전혀 진척되지 못한다’는 여론전을 끊임없이 펼칠 것이다. (…) 둘째, 재벌과 대기업은 윤석열 정부에 적극적인 구애를 할 것이다. 그것이 립서비스에 불과한 투자가 되건, 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적 요구가 되건.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결국 국회의 다수를 차지한 진보 세력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 셋째, 분명 노사분규가 일어날 것이다. 사실 국회에 압도적 다수의 야당이 있는 한 윤석열 정부로서는 어떠한 사회적 혼란에 대해서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윤석열-김건희 팬덤 현상도 한몫할 것이고, 언론의 부추김은 그 도를 넘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정책적 노력은 윤석열 정부의 몫, 실천의 장애는 야당 몫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책임은 누구 몫일까? 당연히 진보 세력 몫이다. (…) 넷째, 대통령 부부는 끊임없이 포퓰리스트적 행동을 할 것이다.
--- pp.130~133
따라서 우리 글쓴이들은 마지막으로, 향후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을 만한 인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21대 대통령선거는 ‘아무리 많이 남아도’ 5년밖에 안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던 어떤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가 이끄는 차기 정부 역시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불확실성을 동반할 것이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대통령을 비롯해 선출된 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에, 대통령이 시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행보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선택된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역시 이러한 불확실성 아니었던가. 단 한 번도 행정적·정치적 경험을 해본 적 없고 확인된 바 없는 인물에게 나라를 맡긴 사태 말이다. 우리가 차기 정부를 이끌어가기에 적당한 인물들을 평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까닭은,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