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카메라와 피사체는 어떻게 대립하는가? 카메라는 어떻게 상황을 통제하고, 피사체를 자극하는가? 카메라는 무엇을 볼 수 있고, 또 무엇을 숨길 수 있는가?
--- p.7, 톰 칼멩 작가 노트 중에서
거울 대신 칼을, 칼 대신 카메라를 손에 드는 순간,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녀의 우울과 자기구원의 스토리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견디고, 또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됐다면, 자신의 고통과 대면하려는 시도라면, 이를 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동참이다.
--- p.29, 박지수 「나밖에 없다고」
이 작업의 목적은 모겔론스병의 특성과 특이성을 전달하는 동시에, 나와 가족들이 이 질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53, 매슈 L. 카스틸, 작가 노트 중에서
순간 나는, 진짜 팔을 잃어버린 고통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어떠한 고통은 나를 직접적으로 찌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내 팔을 보았다. 그것은 몸통에 잘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저리고, 아리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상실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그 팔 하나에 들어 있었다.
--- p.80, 남궁인 「고통, 나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노골적인 고통만큼이나 무력한 슬픔을 경계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어떤 사진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과연 사진이 얼마만큼의 윤리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소금 기둥처럼 굳어버린 채, 결국 자신의 슬픔을 곱씹는 일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 사진은 결국 자신의 윤리적 감식안을 과시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 p.96, 김현호 「고통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는 일」
“전화기를 그리라고 하면, 아직도 핸드폰보다 다이얼 전화기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죽음이나 질병에 관한 시선과 관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탐미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변화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는 죽음과 질병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이미지를 구상한다.
--- p.112, 박지수 「수술이 끝난 뒤에」
관람자는 스스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관람자 스스로 계속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Car Crash Studies〉시리즈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무책임해 보일지언정 이를 결코 ‘비겁한 작품’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p.128, 이기원 「판단보류 요청」
이미지는 진실을 획득하는 방편이 아니라 진실로‘ 다가가는’ 방편이다. 그렇다면 윤리적 이미지의 자리 역시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윤리적인 이미지란 타인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위해 겪은 고통과 사건으로부터 물러서는 이미지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사건에 다가서는 것에 있다.
--- p.137, 이나라 「겪은 시간의 이미지와 두꺼운 고통의 윤리」
자신의 우월함을 우생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노골적으로 ‘타인’의 영역, 즉 ‘격리 구역’을 확장한다. 타인의 영역은 도태되어 마땅하다고 판정된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때 그 영역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였고, 한때는 제3세계라고 불리는 영토와 일치했지만, 이제는 경쟁력 있는 자원을 가지지 못한 못난이들이 살아가는 장소 전체로 확장되었다. 즉, 도태는 ‘세계화’되었다.
--- p.159, 최원호 「옆집에 타인이 산다」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에 관해 사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 자체를 꺼려해요. 그만큼 비극이었기 때문에 히로시마는 역사의 무게에 억눌려 있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인 반응을 담고 싶었어요. 원피스나 스커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해보죠. ‘내가 그곳에 살았더라면 저런 옷을 입었을까, 그날 저 스커트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네.’ 이것이 그 유품들을 대하는 저의 방식이에요.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이고요.”
--- p.167, 박지수 「고통이 지나간 자리」
‘그만두고 싶어’와 ‘그만두면 안 돼’.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문제에 있어 관찰자로만 머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복지회관에서 한국말이 어눌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또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p.232, 김효연,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