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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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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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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92g | 153*215*14mm
ISBN13 9791192411316
ISBN10 11924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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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 선생님이 뒷문의 자물쇠를 여는 사이에 후미야는 서둘러 조리대 앞으로 나갔다. 리쿠오에게 받은 액상 세제 봉지를 기울여 팬케이크 반죽에 부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속으로 당황했다. 들키지 않게끔 세제를 반죽 속에 밀어 넣었다. 손가락에 묻은 달콤하고 끈적한 반죽을 조리대에 걸린 행주에 슥슥 닦았다. 그러고 나자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잘했어, 후미야.”
“나이스, 나이스!”
리쿠오와 가나에의 말에 후미야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심장은 아직 쿵쾅쿵쾅 뛰었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이에 서서히 성취감이 차올랐다. 이 계획을 몰랐던 아이들 몇몇은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고개를 떨군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뭐 하는 거냐고 다그쳐 묻는 아이는 없었다. 후미야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자신이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중략)

리쿠오가 따지고 들면서 후미야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널 감싸 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미야는 뉴스에서 본 ‘후미야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그 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반 친구였으니까. 자주 어울려 놀기도 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화도 수없이 나눈 사이였으니까.

같이 어울리는 사이라 해도 상하 관계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셔틀 취급을 당하고 걸핏하면 놀림을 받는 샌드백 같은 처지였어도,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그들과 어울리는 걸 즐겁게 여기려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즐겁다고 느낀 순간도 몇 번쯤 있었겠지. 그래서 굴욕감이나 분노를 삼키며 관계를 질질 끌고 갔을 터였다. 물론 3반에는 집단 폭행으로 친구를 죽일 만한 아이들은 없었다. 리쿠오나 가나에도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 일도 ‘후미야 사건’과는 다르다.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그런 단계까지 갈 만한 게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라면 친구 사이를 끝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pp.39~52

아즈미는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가는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 공부에 열중할 계획이었다. 국제 연합 직원은 전 세계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직업이다. 그래서 ‘백댄서 따위…….’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뒤에서 춤추는 게 뭐가 즐거운 걸까? 아즈미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데다 다른 사람의 기분도 헤아리지 못하는 가나에보다는 자신이 훨씬 더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가나에와 메구미는 교실 뒤쪽 창가에 있던 마야나 리쓰코같이 인기 많은 여자애들과 모여 꺅꺅거리며 떠들었다. 곧이어 그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한창 유행 중인 케이팝 그룹의 히트곡이라는 것쯤은 아즈미도 알고 있었다. 마치 교실에서 그쪽에만 밝은 빛이 비치는 듯 환했다. 아이들은 쳐다보지 않으면서도 그쪽으로 신경을 쏟고 있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후지오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임시로 3반 담임을 맡게 된 젊은 여자 선생님인데, 밤색 머리카락을 등 아래까지 늘어뜨린 채 언제나 하늘하늘한 소재의 옷을 입었다. 지난달까지 담임이었던 이쿠타 선생님은 지금 휴직 중이었다. 아즈미는 반에서 그런 소동이 있었으니 별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졸업을 앞둔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분개했다. 휴직이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복귀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3반이 졸업한 다음일 터였다. 그러는 편이 선생님에게도 좋겠지.
--- p.65

“넌 종이접기 탐험대의 정식 회원이야.”
정식 회원이라니! 요타의 뺨이 기쁨에 차서 절로 씰룩거렸다.
“첫 과제는 이거. 피리 부는 사람 접기 전개도야. 참고로, 내 오리지널 작품이지.”
“오리지널 작품이요?”
“스스로 디자인한 작품이라는 뜻이야. 종이접기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서 차차 스스로 창작하는 것까지 시도하고 있거든.”
“우아…….”
“이건 피리 부분이 복잡해서 단계가 100개 가까이 되니까 조금 어려울 거야. 하지만 쥐를 이만큼이나 정성스럽게 접는 걸 보니까 넌 분명히 잘 만들 수 있을 거야.”
요타는 덥수룩 머리가 건넨 전개도를 소중히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중략)
알리는 아무리 싫은 일을 당해도 드래건 곁을 지켰다. 드래건이 같은 편에게 배신을 당한 것과 모두의 희생양이 되어 비늘이 검게 변하는 병에 걸린 사연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초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가 드래건이 산성비를 맞고 약해졌지만, 알리는 드래건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드래건이 알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나를 구하려고 하지?”
“사실은 네가 착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야.”
알리가 대답하는 장면에서 요타는 글자가 번져서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처하거나 슬픈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pp.148~150

책가방을 덜거덕거리며 큰길까지 달려가서 골목을 돌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저 멀리에 지호 엄마가 계속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메구미는 짐짓 지호 엄마를 못 본 척했다. 큰길을 걷다가 “재수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메구미가 무사히 큰길로 나갈 때까지 지켜봐 준 거라는 걸. 예전에 지호 엄마와 같이 골목을 걸은 것도 지호가 결석한 날이었다. 그때도 똑같이 이렇게 한참을 지켜봐 주었다. 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는데도 메구미가 가는 길을 지켜봐 준 것이다. 메구미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서 이런 기분을 느끼기는 싫었다.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아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리쓰코와 마야의 태도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야는 재빨리 눈을 피했고, 리쓰코는 인사를 건네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위험 신호였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버블티’에 쓴 글은 두 사람 다 읽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여태 답장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런 일이었다.

메구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둘이서만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게 분명했다. 메구미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몰래 의논했을 터였다. 메구미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저 둘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진지한 글이 아니었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나에의 험담을 한 것이 되면 안 되었다. (중략)

메구미는 가나에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마야와 리쓰코가 메구미의 발언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해서 가나에에게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었다. 리쿠오가 친구에게 마야와 자신의 대화를 보여 준 것처럼. 어쩌면 자기들이 한 말은 삭제하고 메구미가 말한 부분만 편집해서 가나에에게 보여 줬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딱딱하게 굳는 듯했다.
--- pp.197~198

이 돌바닥 길에는 규칙이 있다. 바로 띄엄띄엄 놓인 흰 돌 위만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갈색 돌을 세 번 밟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호노카는 항상 다리를 넓게 벌려서 흰 돌 위로만 걸었다. 이런 규칙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규칙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호노카의 걸음걸이를 이상하게 바라봐도 이유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 덕에 ‘관심 종자’라고 불리는 일도 있었다.
“희한하게 걸어서 다른 사람 관심 좀 받아 보려는 거지.”

호노카는 가나에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규칙을 지키는 중이라고 알려 주고 싶었지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속이 상했다. 호노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가나에에게 한 소리 들을 때마다 울곤 했다.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저런 소리를 들었다. 대부분은 험담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운 것치고는 가나에를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가나에만이 아니다. 호노카는 자기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아이들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속이 상하더라도 다음 날에는 싹 잊고,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식이었다. 6학년이 되고부터는 보폭이 커져서 예전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걷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이 쳐다보는 일도 없어졌다.

물론 호노카는 이 규칙에 어떤 근거도, 실질적으로 따르는 벌칙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애초에 이 규칙을 만든 게 자신이니까.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막연한 상상이나 다름없었지만, 호노카는 이 세계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 커다란 존재가 있다고 느꼈다. 그 ‘무언가’가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무언가가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고, 결점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pp.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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